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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꺼풀이 짙어 동그랗고 큰 눈을 한 현아(가명·9살)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양어깨를 번갈아 들썩이며 춤을 췄다. 지난 10일 부산 현아의 집에서 만난 엄마 이보경(41)씨가 현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원래 이 정도로 활발한 아이는 아닌데, 엄마가 걱정할까 봐 요즘 들어 일부러 더 과장해서 신나는 척을 하는 것 같아요.”
현아는 ‘선천적 거대 모반(점)’을 몸에 지니고 태어났다. 왼쪽 머리 앞쪽부터 이마를 거쳐 눈썹 바로 위까지, 등과 허벅지 등 몸 곳곳에 검고 큰 반점이 있다. 그냥 두면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수백만원에 이르는 수술비 걱정으로 모반을 없애는 수술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지원을 받아 지난해 6월 처음 수술을 받았다. 올해 4월엔 두번째, 다음달에는 세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다. 추가로 얼마나 더 수술대에 올라야 할지는 수술 경과에 달렸다.
아홉살 현아가 감당하기에 쉽지 않은 과정이다. 오른쪽 두피 아래에 둥근 확장기를 넣어 피부 조직을 늘린 뒤, 이를 왼쪽까지 끌어당겨 모반을 잘라내고 덮는 식이다. 현아의 장난기와 애교가 부쩍 늘어난 건, 그 고단한 수술이 시작되고서였다. “엄마를 걱정해서 그런 것 같다”고 엄마는 되짚었다. “그게 더 마음 아파요.”
엄마는 큰 모반을 안고 태어난 현아가 자라는 동안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느끼지 않도록 애썼다. "사람들마다 제각기 점을 지니고 태어나는데, 엄마가 현아를 잃어버리면 찾기 쉬우라고 조금 더 큰 점을 갖고 태어났을 뿐이라고 말해줬어요." 엄마의 노력에도 세상은 현아를 '다른 아이'처럼 대했다.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에 아이를 데려간 날, 희귀한 병을 앓는 아이 모습을 보려 의료진 수십명이 모여들었다. "아이가 꼭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았어요." 현아가 받을 상처를 걱정해 엄마는 치료를 받는 대신 서둘러 귀가했다.
현아가 일곱살 되던 무렵 모반 위에 난 머리칼이 점점 두꺼워지더니 이내 흰머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엄마는 다시 한번 현아를 위해 '하얀 거짓말'을 했다. "머리를 잘 감지 않아서 벌레가 생겼나 보다." 현아는 속아준 것 같다. "아이가 속이 깊어서 그런지 더 물어보지 않더라고요."
수술을 받기 시작하고 짧은 머리와 확장기 탓에 현아가 다시 상처받지 않을까 엄마는 노심초사다. 수술 이후 처치를 위해 머리를 지속적으로 짧게 깎아야 하는데다 야구공만 한 확장기가 툭 튀어나와 있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층 더 쏠린다. 이전처럼 앞머리로 모반을 가리기도 쉽지 않다. 현아는 무더운 여름에도 검은 모자를 눌러 쓰고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집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한적한 공원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엘리베이터조차 타지 않으려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현아는 이달부터 학교에 가는 대신 가정학습을 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부딪쳐 확장기가 손상되면 어렵게 시작한 치료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공부하는 현아를 보며 엄마는 새삼 깨달았다. "약속한 건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도 반드시 지키는 절제력이 높은 아이"였다. 확장기 때문에 눈을 감기 어려운 현아는 밤에도 쉬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많지만, "티브이는 9시 반까지만 보자"고 엄마와 한 약속을 어기는 날은 없다. 엄마가 장을 보려고 잠시 집을 비워도, "10분 문제집 풀고, 10분 쉬어라"는 엄마의 말을 철석같이 지킨다.
다만 하나, 현아는 모반 제가 수술과 치료를 시작한 뒤 식욕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 음식을 수시로 찾는다. 첫 수술 뒤 1년여 동안 체중이 15kg이나 불었다. 엄마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말은 안해도 현아가 받는 스트레스가 누구보다 크겠죠. 그걸 먹는 걸로 푸는 것 같아요. 어제도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더니, 이내 기침을 한 뒤 바닥에 전부 토했어요." 불어난 체중이 현아를 위축시키는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리라는 게 엄마의 새로운 걱정거리다. "원래는 알록달록한 옷 입는 걸 좋아했는데, 수술을 하고 살이 찐 뒤로는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 옷이 아니면 통 입으려 하지 않아요. 오늘 입은 (흰색)옷도 겨우 설득해 입힌 거예요."
엄마는 현아를 홀로 키운다. 현아 아빠와는 현아가 태어난 직후 이혼했다. 공장에서 3교대로 일하며 현아를 키웠다. 그대로 일하며 두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3년여 전 발목 복숭아뼈가 부러지며 엄마가 일을 못 하자 당장 생활이 막막해졌다. 긴급생계지원금을 받기도 했지만 지원 기간이 한정적이었다. 엄마는 다리 재활 뒤 지역자활센터를 통해 어렵게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현아가 모반 제거 수술과 치료를 시작하고서 그 일자리마자 포기해야 했다. 일주일에 두세차례 서울을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현아를 데리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400여km를 오갈 사람이 없다. 외할머니가 가까이 살아 현아네를 자주 들여다보지만 외할머니도 관절염을 앓고 있다. 확장기를 삽입해 늘려놓은 피부 조직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도록 날마다 테이프를 갈아 붙여주고 현아 피부 상태를 살피는 것도 오롯이 엄마 몫이다. 수차례 남은 추가 수술을 위해 돈이 더 필요하지만, 가족 누구도 안정적으로 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생활비와 서울을 오가는 교통비조차 빠듯하다.
현아네 집에는 곳곳에 그림이 걸려 있다. 현아의 꿈은 최근까지도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림 윗부분에는 한결같이 현아가 적은 '현아의 화가 작품'이라는 '낙관'이 적혔다. 최근 여느 아이들처럼 현아는 꿈을 '유튜버'로 바꿨지만, 여전히 그림을 설명하며 수줍지만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건 미뇽이고, 이건 이상해씨예요." 현아가 여섯살 때 그렸다는 포켓몬 그림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엄마는 현아가 "받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고, 자신이 받은 도움을 남들에게 돌려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다. "치료비를 지원받은 덕분에 병원에 가면 저희는 다른 환자들과 달리 계산을 하지 않고 나오다 보니, 현아도 우리가 다른 분들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자연스레 알고 있거든요.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아네 가족 마음 속 그늘에 햇살이 비춰지도록,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과 참여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