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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5일 저녁, 월드비전 여의도 본부에서 작지만 특별한 모임이 열렸습니다. 찐 감자, 두부밥, 세고기만두, 초코파이까지 - 익숙하면서도 낯선 북한의 음식을 함께 나누며, 월드비전은『북한사업 30주년 사』발간을 앞두고 후원자님들과 지난 30년의 대북사업 속에서 ‘사람으로 연결된 북한’을 더 가까이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모임에 참여한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되었을까요? 식탁 위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만남 속에서 비록 각자의 이유는 달랐지만, 그 마음속 진심은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 외할아버지의 고향이 평안남도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북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어요.
- 중학교 시절, 탈북민 친구를 만난 적이 있어요.
- 내가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어떨까?” 하고 스스로 질문해 본 적이 있습니다.
참여한 후원자 이야기
이어 북한을 직접 다녀왔던 북한사업 담당자가 30년간의 대북 사업을 통해 일궈 온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용기, 헌신, 신속, 사람의 키워드로 만들어낸 기적 같은 역사를 함께 만나보세요.
1994년,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이 시작되던 시기. 스탠 무니 햄 월드비전 2대 총재가 외쳤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당시 한국 월드비전 이윤구 회장의 “먼 아프리카 아이들도 돕는데, 같은 민족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라는 한마디로, 법과 절차가 쉽지 않던 상황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최우선 기준으로 첫 대북 지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95년 북한 어린이들에게 옥수수 500톤을 전달하며 생명을 지켜냈습니다. 북한에서의 첫 번째 ‘지도 밖의 행군’이 이뤄진 것이지요.
2000년, 씨감자 재배용 온실 설치와 기술 전수를 위해 한국의 온실 업체 사장님이 홀로 북한으로 향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놀랐습니다. 힘든 일을 책임지고, 흙을 만지고, 누구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장님의 모습.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남쪽에서는 사장도 열심히 일 안 하면 거지가 돼요.” 그 진심 어린 땀과 헌신은 결국 그해 가을, 씨감자 100만 알이라는 놀라운 결실을 만들었습니다.
2004년 용천 역 폭발 사고. 수많은 아이들과 주민이 다친 비극의 현장에, 월드비전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움직였습니다. "긴급구호는 72시간 안에 도착해야 한다." 이 원칙 그대로, 중국 단동에서 신의주로 담요 5천 장을 보냈습니다. 예상치 못한 국경의 문제와 많은 장애가 있었지만, 결국 피해 주민들에게 준비한 담요를 모두 전달하였습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월드비전은 21명의 북한 농학자를 중국으로 유학 보내어 전문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들은 북한에 돌아가 농업 정책을 세우는 실무자, 또는 후학을 길러내는 교수로 성장했습니다. 한때 단순한 ‘농사 기술 지원’으로 시작했던 사업은 결국 사람을 키우고 미래를 세우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북한은 국경 봉쇄의 장기화와 대북 제재, 국제사회 고립, 경제난, 식량난 등 복합적인 어려움 속에 놓여 있으며, 주민들의 고충 또한 계속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은 북한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며, 국경이 열리는 즉시 지원을 재개할 수 있도록 단계별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 있는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언제든 사업이 다시 시작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양실조 아동들을 위한 특별 제작 영양식
농업/식수 시설 보수 및 농업 자재/종자 제공
보건 시설 확충 및 필수 의약품/예방접종 지원
이날 오렌지 테이블에서 나누었던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잇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느꼈던 온기가 언젠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직접 전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