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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작은 친구를 만나러 가요.

  • 2016.07.04

나의 작은 친구를 만나러 가요.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만날 수 없어 편지로만 마음을 주고받았던 예쁜 딸을 품에 안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지난 2014년, 월드비전 후원자 조대득 씨에게 설레는 꿈이 현실로 찾아왔습니다. 조대득 후원자와 스리랑카 후원 아동 수무두(Sumudu)의 가슴 벅찬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201492, 작은 친구를 만나기 위한 여정의 시작.

여름에 못 간 휴가를 대신해 스리랑카의 한 마을 비빌리(Biblie)로 향했다. 사실 비빌리는 일반적으로 관광객이 찾는 동네가 아니다. 지금까지 만난 현지인들도 ‘아무것도 볼 게 없는데 왜 가느냐’고 매우 궁금해했고, 매번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나의 작은 친구를 만나러 가요(මගේ පොදි යනවා බලන්න යනවා).’ 수도 콜롬보(Colombo)에서 엘라(Ella)까지 기차로 11시간 남짓. 거기에서 다시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낯선 여정. 여행 짐의 8할을 차지하는 우쿨렐레를 꾸역꾸역 가져와야 했던 이유인 작은 친구가 있는 비빌리로 향한다.

#201211, 실론섬에 사는 10살 소녀를 알게 되다.

스리랑카에 사는 수무두(Gunawardana Sumudu)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난 2012년. 월드비전을 통해서였다. 사실 나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년여간 한국해외봉사단(KOICA) 소속으로 스리랑카에 파견되었었다.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사투리 섞인 싱할라어(현지어)를 배우고 그들과 함께했기에 나에겐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기왕이면 스리랑카 아이를 후원하고 싶었다. 물질적인 측면을 넘어 아이와 정서적인 교감을 하고, 부족한 현지어 실력으로라도 직접 편지를 써주고 싶어서이다. 그래야 오랜 시간 가치 있게 후원을 지속할 것 같아 정한 나름의 소신이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인연을 맺게 된 10살 소녀 수무두. 내가 ‘딸아이’라 부르는 아이. 이 친구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2장의 사진으로 본 얼굴과 초등학교 수준의 현지어로 주고받은 편지 네 통이 전부였다. 나는 파견당시 스리랑카의 해안마을 Galle에 살았던 이야기를 편지로 전했고, 수무두는 스리랑카에 꼭 한번 다시 오라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보냈다. ‘우리 마을에 오려면 Nuwara Eliya에서 버스를 타세요!’라며 친절한 길 안내까지 덧붙였다. 별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였을 수도 있지만 ‘꼭 놀러 오세요!’라고 꾹꾹 눌러쓴 수무두의 한마디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결국, 나는 월드비전에 현지방문을 신청하고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201493, 눈앞에 다가선 내 딸

수무두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나를 무서워하면 어쩌지? 떨리는 마음으로 수무두의 집을 향했다. 수무두네 가족은 ‘월드비전 새집 짓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은 튼튼한 집에 살고 있다. 걱정과 달리 멀리서도 단번에 눈에 띄는 내 딸, 수무두. 실물이 사진보다 100배는 더 예쁜 아이였다. 나를 보자마자 내 목에 나뭇잎 목걸이를 걸어주고 발에 입 맞추는 인사를 건네는 수무두.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스리랑카에는 왕이나 스승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나뭇잎을 드리며 발에 입을 맞추는 풍습이 있다.)

무엇보다 감동이었던 것은 내가 회사와 집에 수무두의 사진을 걸어 놓은 것처럼 수무두도 내 사진을 집에 걸어놓았다는 것이다. ‘나만 이 아이가 각별했던 건 아니구나!’하는 생각에 긴장했던 마음이 쓱 풀렸다. 아이는 내가 쓴 편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아놓았다. 나는 가방 가득 챙겨온 선물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정성을 표현하기에 부족하지 않으면서도 아이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산 옷과 한국 과자, 학용품 등이다. 수무두에게 내 마음이 온전히 전달될까?

선물을 전한 후, 열심히 연습한 노래를 불러주려 챙겨온 우쿨렐레를 꺼냈다. 스리랑카 봉사단원 시절 즐겨 부르던 ‘에떠란 위만 뚜린(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사랑 노래)’과 싱할라어로 번역한 이승철의 ‘소리쳐’ 등 이었다. 그러는 사이 수무두의 어머니께서 진수성찬을 준비해주셨다. 매운 감자 카레와 빠빠담 등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는 풍성한 음식이었다. 위가 더 컸더라면 더 많이 먹었을 텐데. 어머니께서는 가는 길에 먹으라고 남은 음식도 모두 싸 주셨다. 한국까지 가져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통 복장으로 갈아입은 수무두와 친구가 쭈뼛쭈뼛 어슬렁거리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답가를 준비했단다. 작지만 멋진 뮤지컬 공연을 보여줬는데 정말 귀여웠다. 어느새 수무두를 비롯한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뭔가 눈시울이 시큰해지고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다. 이번에 가면 당분간은 갈 일 없겠지 하고 찾아온 스리랑카였는데. 막상 수무두를 직접 보니 머지않아 다시 와야겠다 싶다. 수줍어하던 첫 모습과 달리 이제는 다정하게 인사하는 친절한 수무두. 나는 이 아이에게 발에 입을 맞추는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고마웠다.

#2014912, 짧지만 행복했던 하루를 회상하며

그곳에 다녀온 후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수무두 좀 예쁘지 않아?”라고 묻는 내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딸 바보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거짓말처럼 만나게 된 12살 딸 아이 수무두는 몇 년 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조만간 수무두와 찍은 사진을 출력해 편지에 담아 보내야겠다. 함께 공유한 시간이 생겼으니 편지에 쓸 말이 더 많을 것 같다.

 

글 /사진. 조대득 후원자
편집. 김유진 디지털마케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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