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사업장

전 세계의 생생한 사업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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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말이지 기댈 사람은 여러분밖에 없다

  • 2013.12.13

희망사업장 말리: 참말이지 기댈 사람은 여러분밖에 없다- 한비야 한국월드비전 인도적 지원 전문가 특별기고
여기는 서아프리카 말리. 얼마 전 한국 국가 대표팀과의 축구 경기 덕분에 반짝 관심을 끌긴 했지만, 말리는 우리에게 생소하기만 하다. 그런데 아는가? 이 나라가 13세기부터 200여 년간 이 지역 최강자로 군림했던 ''말리제국'' 이었다는 것을. 사하라 사막을 통과하는 금과 소금의 독점무역으로 쌓은 부가 어찌나 막대하던지 한 황제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성지순례를 오가며 물 쓰듯 쓴 금 때문에 그 순례길에 걸쳐 있던 나라들이 수십 년간 물가 폭등에 시달렸다는 얘기가 전해올 정도다.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후 비교적 평화로웠던 이 나라에 내전이 났다.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북쪽 반군과 외부 이슬람 세력이 합세해 정부군과 일전을 벌인 거다.  이로 인해 50만 명 이상의 북쪽 주민들이 난민이 되어 남쪽이나 이웃 나라로 피란을 떠났다. 월드비전은 말리를 카테고리 3 재난 국가로 선포하고 전 세계 월드비전의 물적·인적 자원 등을 총동원해 말리 정부, UN 및 타 NGO들과 함께 이 난민들을 돌보고 있다. 나 역시 그 ''총동원 인적자원'' 중 한 명이다.

(좌) 현지 직원과 회의를 하며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협의한다. (우) 사업모니터링과 주민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적힌 한비야씨 노트

한밤중에 들이닥친 반군을 피해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난민들은 남쪽 도시에 사는 친인척 집에 머물거나 남의 집 방 한 칸을 월세로 빌려 살고 있는데, 길어야 한 달 정도일 거라고 예상했던 피란생활이 1년이 넘어가며 이들은 도시의 최하층 빈민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다행히 올 초, 프랑스군이 개입해 반군을 사하라 사막 북쪽 국경 지방까지 몰아냈고 지난 8월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북쪽에서도 받아들여 안정을 되찾으면서 난민들이 속속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국 월드비전은 피란민과 귀향민을 위한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데 특히 북쪽 두엔자 지방에서는 NGO 최초로 귀향민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리 식구는 바마코에서 짐승처럼 살았어요." 말리의 수도 바마코로 피란갔던 초등학교 여교사 20대 파투마다는 경직된 열굴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집세가 너무 밀려 만삭의 몸으로 가축우리였던 곳을 비닐로 겨우 지붕만 덮은 곳으로 이사했어요. 장마철이라 비가 매일 와서 옷과 이부자리가 늘 축축했어요. 생쥐와 진드기와 모기까지 득실거리는 그 가축우리에서 아이를 낳았죠. 그러나 산후조리는 커녕 단돈 1,000원을 벌기 위해 낳은 지 보름도 안 된 갓난아이를 업고 하루 종일 남의 집 빨래를 해야 했어요. 고향에선 트럭 운전수 였던 남편도 시장에서 남의 채소 수레를 끌어주고 겨우 채소 한 다발을 받아오곤 했죠. 말라리아에 걸려 몸이 펄펄 끓는데도 쉴 수 조차 없었어요."

제일 힘들었던 건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일곱 살과 다섯 살짜리 아들 둘이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깡통을 들고 구걸하러 나가는 걸 못 본 척해야 하는 것이었단다. "그럼 어떻게 해요? 앉아서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향이 난리통에 쑥대밭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집과 논은 불타 없어지고 우물은 메워지고 가르치던 학교는 부서지고 가축들은 몽땅 약탈당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볼 거예요. 여기가 고향이니까. 당장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고요? 식량지원은 없어도 괜찮아요. 대신 구걸하던 동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부서진 학교를 고쳐주세요. 그리고 농사 지을 씨앗과 새끼 염소 한 마리만 지원해주세요. 그러면 나머지는 우리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할게요. 1년만 도와주세요. 딱 1년만요."

난민들이 속속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아쉽게도 우리 프로젝트는 6개월 후면 끝난다. 나머지 6개월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참말이지 기댈 사람은 여러분밖에 없다.

말리 아동들과 함께한 한비야 한국월드비전 인도적 지원 전문가

한비야 / 한국월드비전 인도적 지원 전문가
한비야는 2001년 ~ 2009년 6월까지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으로 활동했으며, 2009년말  퇴직 후 미국 유학을 떠나 미국 터프츠대 플래처스쿨에서 ''인도적 지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11년 UN CERF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위촉됐으며 같은 해 11월 IDHA (International Diploma Humanitarian Assistance) 인도적 지원 고급 교육과정 정식강사 및 한국월드비전 초대 세계시민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8월 ~ 2014년 2월까지 말리월드비전에서 내전으로 인한 난민지워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월드비전지 11+12월호 수록]
글. 한비야 (한국월드비전 인도적 지원 전문가) / 사진. 장원선 대외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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