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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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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간다] 카총가/나만요니 사업장 방문기

  • 2008.09.11

모닝콜의 음악소리와 함께 아프리카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비몽사몽으로 있는 와중에 가려움이 느껴져서 무의식적으로 목을 긁었다. '아, 모기에게 물렸구나.'라고 생각하며 계속 긁었다. 그러다 몇 초 뒤, 익숙하지 않은 호텔방의 인테리어를 보며 내가 우간다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간다의 수도인 캄팔라의 아프리카나 호텔에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만감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나는 이제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 것인가? 내가 우간다까지 굳이 올 이유가 있었을까? 차라리 여기까지 오는 경비로 우간다의 아이들을 도와주면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일단 어젯밤에 먹은 말라리아 예방약을 생각하며 놀란 가슴을 가라앉혔다. 계속 내 머릿속에는 여기에 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인가? 라는 의문이 남았다. 계속 온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하루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업장으로 가는 길에서 본 우간다의 환경은 생각보다는 좋았다. 길은 차로 인해 먼지투성이고 매연이 가득했다. 길가에는 페인트가 낡아 벗겨진 건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길가의 노점상들은 우리나라의 재래시장과 같은 풍경을 보였다. 우간다 주민들이 마투케라 불리는 덜 익은 바나나와 카사바라는 마 비슷한 식물들을 직접 농사지어서 팔고 있었다. 상인들과 오토바이를 타며 콜라를 마시는 바이커족들의 모습은 정글과 야생 동물들이 뛰어 놀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실제로 우간다는 아프리카 내에서도 장족의 발전을 이룬 나라이고 높은 잠재성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나라라고 한다. 그런데 수도인 캄팔라를 나오자 도시적인 모습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야생동물은 없었지만 주위에는 열대나무로 무성한 숲과 옥수수와 카사바를 기르는 밭만이 보일 뿐 이었다. 이런 도시화의 차이와 빈부격차 현상은 목적지에 다가 오면서 더욱 확연해졌다.
 
우리가 가장먼저 방문한 곳은 나만요니 사업장이었다.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마치 세계적인 스타라도 된 기분이었다. 마을에 있는 모든 주민들이 나와 우리를 열렬히 맞이해 주었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으로는 처음으로 해외로 나온 나로서는 이런 광경이 실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저 결연아동에게 선물을 주고   월드비전이 지원한 학교를 방문하려는 목적으로 온 것인데, 온 동네 주민들이 모두 나와 환한 웃음과 연습해온 노래와 춤으로 너무도 정겹고 따듯하게 맞아주셔서 정말 눈물이 핑 돌만큼 감격스러웠다. 포스터에 우리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꾸며온 동네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우리가 더 큰 선물을 받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나중에 선물 전달식을 할 때 배가 되었다. 준비해간 조그마한 선물을 줄 때 마다 결연아동들도 감사패를 전달해 주었다. 우리가 떠나는 순간에도 마을주민들이 입을 맞춰 노래를 부르고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고마웠고, 다음 일정 때문에 더 오래 같이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 후에 우리는 에이즈 결손가정을 방문했다. 우리가 방문한 가정들은 모두 비슷한 분위기였다. 모두 다 가난에 허덕이며 주거환경은 너무 열악해서 집안에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두 자녀를 모두 에이즈로 잃은 할머니는 손자들 8명을 돌보고 있었다. 할머니까지 9명이 5평도 안 되는 집안에서 산다는 것이었다. 생계는 집 뒤에 있는 밭에 옥수수와 카사바를 길러 먹을 식량만 겨우 구할 뿐이라고 했다. 그나마 한 아이에게 후원자가 있어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결연아동 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지역사회 전체가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 아동결연사업이기 때문이다. 준비해온 사탕을 주니 아껴 먹는다고 한 번 핥고 다시 사탕봉지 안에 넣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그리고 나서 후원자님이 보내주신 선물금으로 재봉틀을 구입하고 아동의 가족들이 재봉 기술을 익혀 옷을 만들어서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결연아동의 가정을 방문하였다. 지금은 인근 학교의 교복을 만드는 일을 맡아 가정 형편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이제는 본인들도 주변 이웃들을 돕고 독려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고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다음에 방문한 나마파파 초등학교는 학교라 부르기 힘든 곳이었다. 교실이라고 할 수는 없고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등나무교실과 같은 허름한 건물 하나뿐이었다. 큰 나무가 서너 그루가 있었는데 그 밑에 칠판과 같은 큰 검정색 돌을 가져다 놓고 가르치고 있었다. 학교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 학교 교사들은 월급도 받지 못 하고 단지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자진해서 봉사를 한다고 했다. 이런 학교의 모습을 보며 평소에 공부하기 싫다고 투정 부리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 학교에서도 우리는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학생들이 줄을 맞춰 며칠 동안 열심히 연습해온 노래를 하나같이 부르는 것 이었다.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그러나 이 학교가 있는 지역이 콜레라가 발병 지역이어서 일찍 철수 해야만 했다. 안타까웠다.



나마파파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사는 동네의 식수원을 방문해 식수 청결도를 점검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하천에서 주로 여인들이 물을 통에 담아 오는 형태였다. 설상가상으로 그 하천의 물은 너무 더러워서 이것이 식수원인지 하수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주위에 개구리와 벌레들도 들끓었고, 심지어 하천에 직접 발을 담가 물을 길어오니 더러운 발까지 씻은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였으면 상상도 못할 그런 물이었다. 이런 물을 마시는 주민들이 콜레라며 여러 질병에 걸리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할 정도의 그런 물이었다. 그러나 더욱이 충격적인 사실은 이것이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물들 중 하나란다. 생전 처음으로 깨끗한 물을 마시고 물 구할 걱정을 안 하고 살아 가는 나는 정말 축복받은 아이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일어나보니 또 모기한테 한방 물렸다. 한번 물리는 게 무섭지 두 번째 물리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았다. 오늘은 우간다 방문의 주목적지인 카총가 사업장의 나웨요 초등학교 도서관, 교사숙소 방문이 있었다. 초등학교의 완공식 행사에는 우간다 장관을 비롯하여 여러 정부 관리들과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석했다. 이들과 함께 우리는 완공식을 축하하고 마을에서 준비한 음식을 같이 먹었다. 여기에 월드비전의 사명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아동을 후원하고 학교를 세워 교육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봉사이자 후원의 모습이라고 느꼈다.



이번의 우간다 방문으로 나는 아프리카의 실태를 알게 되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것과 실제 아프리카를 방문하며 느낀 것은 판이하게 달랐다. 실제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파리가 붙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음식을, 더러운 물을 그대로 먹으며 사는 모습을 보니 내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생활환경은 최악이라고 보여졋다. 나였으면 내가 처한 상황을 한탄하고 원망하고만 있을텐데 우간다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방문해 있는 동안 나에게 "무준구 무준구"(이방인 이라는 우간다 토속어)라 부르며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을 때는 즐겁게 포즈까지 취해주는 이들은 내가 예상하던 가난에 찌든 어두운 아이들이 아니었다. 내가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원망하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실로 생활을 즐겁게 보내며 World Vision의 후원을 감사하며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이었다. 우리에게 고맙다고 불러주는 노래와 춤은 어느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었다. 



월드비전 친선대사이신 김혜자 선생님이 하신 말씀처럼 그들도 실로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귀한 아이들 이었다. 없는 것만 불평하며 모든 걸 가지기 원하는 우리 한국의 학생들은 우리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듯 보이지만 자신들이 가진 것에 대해, 자신의 생활에 대해 감사하는 이들에게서 분명 배울 것이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나이 또래가 비슷한 친구들과 다시 한 번 가서 나웨요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내보고 싶다. 이런 아이들의 웃음이 떠나지 않게 하려면 직접 가서 부족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들을 가르쳐 주고 그들이 사는 곳 저 너머에 새롭고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한 나의 존재가 그 아이들에게 구체적 희망과 꿈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 김현우 (샌앤베필드 고등학교, 대구경북지역 학생자원봉사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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