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안내

모든 어린이에게 풍성한 삶, 당신의 나눔으로 시작됩니다.

자료센터

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나의월드비전

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희망사업장

전 세계의 생생한 사업현장.
오늘도 우리는 그 곳에 희망을 심습니다.
  • [우간다] 월드비전 우간다 사업장 방문기

  • 2006.07.27

월드컵으로 세계가 환호하는 동안 오랜 식민지 생활과 내전, 기근, 질병과 무지로 힘겹게 살아가는 나라, 아프리카 우간다공화국을 세계적인 구호단체인 한국 월드비전 대구지부의 일원으로 방문(2006. 6.20∼6.27)하게 되었다.

우간다는 동아프리카의 내륙국으로 적도상에 위치하며, 국토는 약24만㎢, 인구 2,600만명,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빅토리아 호수를 끼고 북쪽은 수단, 동쪽은 케냐, 남쪽은 탄자니아, 서쪽은 콩고와 국경을 접한 나라로 나일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열대의 사바나 기후인데 우리가 방문한 시기는 건기, 비가 내리지 않아 곳곳이 붉은 흙먼지가 쌓여있고, 방문 기간 내내 차량 이동 시 먼지로 고생하였다.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고, 현재는 무세베니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으며, 2003년 1인당 GDP 247불의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
엔테베 국제공항에서 수도 캄팔라까지는 차량으로 약 1시간 거리이다. 인접국인 케냐와연결하는 1번 국도는 도로의 중앙만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는데, 곳곳이 패인 채 교행하는 많은 차들로 흙먼지를 날리고 있었다.

캄팔라에서 1번 국도로 약 5시간 달려 케냐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 높다는 엘곤산(4,321m)이 남쪽으로 멀리 바라다 보이는 부탈레자 군 카총가 지역에 도착했다. 이 곳은 수도 캄팔라에서 약 250km 떨어진 오지로 36개 마을에 약 3만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주민의 90%가 신석기 시대의 움집과 비슷한 전통적인 흙집에 살며, 인구의 절반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로 카총가 지역에만 6,000명에 이르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부탈레자 군 카총가 교육청을 방문하였다. 교육청은 단층 건물로 연면적은 30∼40평 정도며 지붕의 함석이 군데군데 삭아 있었다. 교육청 옆에 위치한 학교에서 때마침 ‘환경의 날 기념식’이 개최되어 교육장은 행사에 참석하고, 부교육장과 장학사 2명 , 학부모회장과 학교운영위원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방이 모두 4개인데 건물 중앙에 홀이 있고, 정면 2개 방을 교육청이, 좌우측은 물 사업소와 기술사무소가 사용하고 있었다. 교육청의 비품은 2개씩의 책상과 의자가 전부였다. 부교육장의 교육 현황 브리핑에서 90년대 중반에는 문맹률이 50%를 넘었으며, 1995년 초등학교 의무 교육을 실시하였으나 경제 사정으로 실패하고, 2002년부터 다시 초등학교 의무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예산 부족으로 많은 어린이들이 교육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문맹률은 여전히 30%에 이른다고 한다.
학교에는 건물다운 건물이 없고, 교사 봉급을 제때 지급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교사들이 거주할 집도 없어 교사 유치가 어렵다고 했다. 또, 기근과 질병 등 열악한 환경으로 국제 사회의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부교육장 일행과 함께 우리가 방문한 곳은 ‘나웨요 초등학교’이다. 교육청에서 15명을 태운 일제 토요다 미니버스가 옥수수 밭 사이 길을 약 1시간 달려서 도착하니, 학교 운동장에 마을 주민 천여 명이 운집해 있었다.
TV화면에서만 보던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괴성과 현란한 몸동작으로 된 전통춤이 우리 일행을 맞는다. 익숙하지 않은 풍속에 어리둥절해 하는 동안 월드비전 카총가 사업장 책임자인 폴이 우리를 큰 나무 밑의 환영식장으로 안내하였다. 그곳은 1, 2학년 2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노천교실이라고 한다.
여학생들은 푸른색 원피스, 남학생들은 푸른색의 반소매와 바지를 입고 맨발로 환영의 춤을 추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부에서 지급해 준 교복이었는데, 이 교복은 100% 폴리에스테르로 우리 나라의 민방위복과 비슷한 천이었다. 그나마 겉옷만 있고 내의는 없으며 모두가 맨발이었다. 학생들은 검은 피부에 유난히 맑고 초롱초롱한 눈을 가졌고, 눈동자 속에 담겨 있는 아련한 애수와 함께 삶과 배움에 대한 강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대표가 ‘나웨요 초등학교’를 월드비전의 해외사업장으로 선정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환영의 인사말을 했다. 나는 인사말에서 대한민국도 50여 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한 나라였다. 우리 부모님들께서 가난하여 굶다시피 하면서도 자녀교육에 힘쓴 결과 잘 살게 되었다고 했다.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며 배워야 한다는 말을 할 때 주민들과 학생들은 감탄과 환영의 괴성을 질렀다.
환영식 후 학교를 둘러보는데, 벽돌로 된 건물이 한 채가 있어 들어가 보니 교실 한 칸에는 3∼4학년 학생 130여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었다. 칠판 이외에는 아무런 교재도 없었고, 전기도 조명기구도 없어 어두컴컴하였다.
옆에는 교실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 나무기둥에 함석지붕을 덮었지만 한 쪽은 하늘이 훤히 보였고, 벽이래야 옥수수 대로 엮어 놓은 짐승 우리 같은 곳에서 5∼6학년 150여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었다. 2절지 정도 크기의 검은 칠을 한 휘어진 판자를 흑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두 학급 사이에는 벽도 없이 그냥 옥수수대로 엮어 놓아 서로 공부하는 모습이 보이고 말소리도 다 들렸다.
이 광경을 목격한 이태완 목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우시자 일행 모두가 한순간 숙연해졌다. 나도 이들의 처참한 모습과 6·25 전쟁 중 폭격으로 학교가 다 타버리고 살구나무 밑에서 가마니를 깔고 공부하던 초등학교 시절이 겹쳐 눈물이 핑 돌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땅바닥에 앉아서 책도 노트도 없이 선생님의 설명과 판서를 그냥 듣고 보기만 하였다. 이곳에는 아이들을 위한 교실도 학용품도 없다. 그러나 배움의 의지는 강열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을 위하여 월드비전 대구·경북지부와 대구교육청이 협력하여 학교를 지어줄 계획인데 2007년 준공 목표로 8천여만원 소요된다.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매일 예배에 참석하여 이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를 했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식수인데, 나웨요 초등학교에는 우물도 없었다. 7∼8백 미터 쯤 거리에 있는 물웅덩이에서 황토색 구정물을 그대로 먹고 있었다. 600여명이 쓰는 학교의 화장실이 겨우 2간이 전부였음을 볼 때, 그들의 위생 관념은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았고, 평균 수명이 45세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음날 찾아간 곳은 카총가 보건소였다. 마당에는 아이를 데리고 온 많은 아낙네들이 모여 있었는데 예방 접종을 하는 날이라고 했다. 한쪽에서는 월드비전 사업으로 추진하는 ‘에이즈 예방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었다. 행정직인 보건소장은 의약품이 부족하여 애로가 많다는 설명을 했다. 한 때는 국민의 11%가 에이즈 감염자였는데 이제는 약 6.8%로 감소했다는 설명을 듣고 답답한 마음에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무슨 병에 걸린 지도 모르고 죽어간 에이즈 환자의 유족인 열세 살의 그레이스양과 열 살의 치부치 남매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들은 햇빛도 들지 않는 컴컴한 방에서 흙바닥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희망의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바로 월드비전에서 운영하고 있는 바난욜 청소년직업훈련소였다. 이곳은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청소년들이 사회 적응 훈련을 받는 곳으로 남자들은 벽돌을 쌓는 기술과 목공을, 여자들은 재봉틀로 옷을 만드는 기술을 익히 고 있었다. 이곳에서 1년 동안 교육을 받으면 수료 시 재봉틀 1대를 주는데 이를 밑 천으로 취업이나 자영으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들의 맑고 순진한 눈빛과 힘차게 재봉틀을 밟는 모습에서 이들에게도 머지않은 장래에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를 기 대해 본다.

월드비전의 지역 개발 사업은 단순한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현지인을 통한 교육과 구호사업(보건교육을 위한 자원봉사자의 200명 양성 등)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활 능력을 길러주고 있었다. “물고기를 잡아 주기보다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매우 적절한 사업이라고 생각하였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에이즈 환자가 줄고 있으며, 교육을 통해 잘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에게는 우리의 도움이 매우 절실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우리나라도 1991년까지는 다른 나라 월드비전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며, 1992년부터 다른 나라를 돕기 시작하여 2006년 현재 월드비전 한국이 지원하는 사업장이 40여개에 이른다는 김순이 대구·경북지부장님의 말씀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한편 남을 돕는데 인색한 내 자신이 무척 부끄럽기도 했다. 귀국하면 월드비전의 사업에 좀더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또 하루를 마무리 한다.

평소 세계평화와 지구촌의 복지를 운운하면서도 의·식·주와 보건·의료 시설이 부족하여 인간의 최소한 존엄성도 지켜나가지 못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착찹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와 국민이 잘 살고 못사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의 역량에 달렸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 역사를 보면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있는 나라는 잘 살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가난과 무지와 몽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었음은 우리 부모님들의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크게 작용했지만, 6.25 전후의 폐허 속에서 고통 받을 때, 우리에게 따듯한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준 이웃의 힘도 컸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지난날 우리가 받은 도움을 이제 되갚아야 할 때라고 생각을 한다.
우리보다 어려운 나라를 도울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부모님들의 수고로움을 결코 잊지 않는 후손이 되도록 학생들을 지도해 나가야 하겠다.

  • 인쇄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