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사업장

전 세계의 생생한 사업현장.
오늘도 우리는 그 곳에 희망을 심습니다.

  • [강원 동해] 기아체험 24시간 국내스터디 투어를 마치고

  • 2004.09.01

2박 3일간의 짧은 시간동안 과연 스터디투어에 참여한 학생들은 무엇을 느낄까? 저마다 다른 기대와 소망을 갖고 참여할 텐데 그 기대를 얼마나 채워줄 수 있을까? 기대와 염려가 뒤섞인 마음으로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정 방문을 했다. 2개 조로 나뉘 어 한 팀은 3남매와 조부모가 사는 가정으로, 다른 한 팀은 혼자 사시는 노인댁으로 갔다.

나는 독거노인 가정에 학생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남편도 자식도 없이 혼자 사시고, 작년 수해로 많 은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사전에 들었었다.

우리는 할머니를 시장에서 만나 승합차를 타고, 함께 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새로 산 대나무 소쿠리를 들고, 등에는 배낭을 매고 계셨다. 차에 오르는 할머니를 부축할 때 난 할머니의 손을 잡아 드렸다. 갈라진 손끝과 거칠거칠한 할머니의 손은 내가 이미 들었던 할머니의 삶을 확인해주었다.

할머니 댁에 가는 길 곳곳에 지난 수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파헤쳐진 강둑, 쓰러진 나무 그리고 군 데군데 서있는 콘테이너들, 이곳 저곳에서 새 집을 짓는 모습이 보였지만 활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차를 타고 한참을 가다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한 눈에 봐도 허름해 보이는 할머니 집은 동네에서 좀 외떨어진 곳에 있었다. 할머니가 쓰시는 방은 두 사람이 겨우 누울 공간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 방문은 창호지로 발라져 있었고 창호지 안쪽으로 물 흐르는 소리와 건너편에 차가 지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이렇게 개울과 가까우니 지난 수해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셨을까? 할머니는 부엌에 들어찬 물과 흙 을 퍼내며 한참을 우셨다며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 해주셨다.

할머니는 처음 보는 우리를 스스럼없이 대해주셨고 우리에게 찾아와 주어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정작 고마운 건 우린데…. 할머니는 나무를 때고 계셨다. 뭔가 해드리고 싶던 차에 잘 됐다 싶어서 우리는 땔감을 만들기로 했다.

할머니가 모아 놓으신 나무를 톱과 도끼로 자르고 나르는 일을 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도끼질과 톱 질도 학생들은 즐겁게 했다.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견스러워 보였다. 할머니는 "모 두들 집에서 귀하게 자란 자식들인데, 이렇게 힘든 일을 해서 어쩌냐"시며 안타까워 하셨다. 그런 말씀을 들으미 부끄러운 마음이 더 욱 커져갔다.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고맙다며 커피를끓여 주셨다. 조그만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는 너무 진하고 달아서 삼키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자식 같고 손주 같은 우리에게 뭔가 주고 싶은 마음, 그 정이 듬뿍 담겨진 커피였다.

일정이 다 되어 돌아와야 했던 우리에게 할머니는 "여름에 꼭 다시 오라"시며 개울 건너 편에서 잘 가라고 인사를 하셨다. 가슴에 찡한 뭔가가 느껴졌다.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한 자원봉사자의 말을 듣고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만남에 아쉬워하며 우리는 발길을 돌렸 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짧은 인간관계 훈련 을 한 뒤 우리는 내일 있을 방과후 어린이 교실 수업 준비를 했다. 1조는 NIE(신문활용교육)를 위한 준비를 했 고 2조는 체력 단련을 위한 ''''''''무술''''''''교육을 준비했다. 조장이 초등학교 교사 교재에서 여러 가지 교육 주제와 자료를 찾아왔 고 중고생 자원봉사자들은 그 내용을 아이들이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수정했다.

3명이 차례로 선생님이 되어 내일 있을 수업을 위한 시연도 해봤다. 2조는 유도와 태권도를 하는 대 학생이 학생들에게 무술을 가리켰다. 이들은 다음날 수업시간에 방과후 교실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 밤이 깊도록 고함을 지르 며 연습을 했다.

 

 
 

다음날 오전 우리는 맑은 바다가 있는 삼척에 가 서 속 박물관을 방문했고 오후에는 방과후 어린이 교실에 갔다.

창호초등학교 1, 2, 3학년으로 구성된 10명의 학생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아이들은 한 눈에 보기 에 도 도시 아이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입고 있는 옷도 그랬고 아이들의 신체도 도시 아이들에 비해 작고 가벼웠다.

대부분 조부모 또는 한 부모 세대 아이들이라고 했다. 우리는 준비한 수업을 하는 내내 마음이 아팠 다. 학생들도 마찬가지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온 학생들은 "어린 동생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고 지금의 자 기 처지에 대해 감사하다는 것을 새삼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저녁 먹은 후에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다하고 이번 투어에 참 여한 요셉이를 위해 조촐한 졸업축하 파티를 열었다.

마지막날 우리는 새벽부터 바쁜 일정을 보냈다. 새벽 6시 에 일어나 촛대바위 일출을 보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차에 몸을 실었다. 아주 빨갛고 귀여운 해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서둘러 복지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제 사놓은 찬거리를 꺼내서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 했다. 음식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할 지 몰라 우왕좌왕 했지만 서로 일을 분담해서 두 시간만에 밥과 국과 반찬을 만들었다.

이면수 구이, 북어국, 참치동그랑땡, 달걀찜, 묵 무침 등. 우리는 서로를 대견해하며 세 가정으로 도 시락 배달을 나갔다. 할머니들이 이 음식을 좋아하실까? 할머니들 입맛에 맞을까? 처음 뵙는 분 댁에 가서 불쑥 도시락을 내놓고 어떻 게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차를 타고 할머니댁으로 가는 동안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세 가정에 가기 위해 학생들은 3개조로 나뉘었 다. 첫날 만났던 할머니 댁, 마흔이 넘은 정신지체 장애인과 사는 할머니 댁, 허리가 굽고 다리도 굽어서 제대 로 설 수 없는 할머니 댁이었다.
이 할머니는 앉아서 생활을 하실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이 안아서 옮기지 않으면 바깥출입을 할 수 도 없었다. 나는 세 번째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할머니는 처음 보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할머니가 사시는 방은 너무 작아서 할머니와 마실 오 신 동네분을 포함해서 6명이 다닥다닥 붙어앉아야 했다.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서 함께 먹자, 할머니는 아주 기뻐하시며 "이 렇게 우리집에 사람들이 모여서 밥을 먹으니, 이 얼매나 좋으노"하며 먹지 않아도 기분 좋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조금 전에 식 사를 마치셨다며 우리가 만든 음식은 드시질 않았다.

대신 우리는 할머니 몫으로 준비한 도시락을 댁에 두고 나왔다. 서울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일정 이 바빴던 우리는 서둘러 일어나야 했고 그런 우리를 보고 할머니는 눈물을 보이셨다. "왜 벌써 가려고 하냐"며 서운함을 감 추지 못하고 울먹이는 할머니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얼마나 그리우셨으면 이러실까? 코끝이 찡했다.

도시락 배달을 마치고 복지관에 돌아오니 한 친 구가 내 게 곶감을 내민다. 이틀 전 찾아갔던 할머니가 나를 기억하시고 내게 곶감을 전해주라고 하셨단다. 무 척 기뻤다. 그 할머니는 학생들이 도시락을 만들어서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곤 손수 오곡밥을 지어 놓고 학생들을 기다리셨다고 한 다. 학생들은 오곡밥을 두 그릇씩 먹고 자기들이 준비해 놓은 밥은 두고 왔다고 한다.
학생들 모두 할머니의 따스한 정을 느끼고는 기분이 좋아서 얼굴이 모두 환하다. 학생들에게 이런 정 을 느끼게 해주신 할머니께 너무 감사했다.

2박 3일 동안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며 학생들은 하나같이 의미있었다는 말을 했다. "이런 체 험은 처음이고, 이렇게 어렵게 사는 분들을 처음 뵈었다" "또 와서 봉사하고 싶다"" 내 집 주변에서 이런 분들을 찾아서 도와야겠다" "내 삶에 감사하게 되었고 부모님께 감사하게 되었다"는 말들 을 했다. 학생들이 이런 마음을 얼마나 간직하며 살아갈 진 모르지만 마음 한구석, 기억 한편에 늘 자리잡고 있어서 이 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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