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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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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리랑카] 섬머아일랜드 사업장 방문기

  • 2006.03.28

"예상대로 스리랑카는 아름다운 땅이었습니다."
2월6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처음 뵙는 후원자분들과 허보영 주임님, 그리고 반가운 얼굴, 이정임 팀장님을 만나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처음에는 후원아동 만남을 빌미로 사실 일상을 탈출해서 자유를 느끼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 첫째날 >
월드비전 스리랑카 본부를 방문하여 현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밀크티 등 다과 대접과 함께 지역개발사업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방문할 섬머아일래드 지역개발사업장은 수도 콜롬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중남부 Sevanagala에 위치하고 있으며 월드비전 싱가폴과 함께 월드비전 한국 후원자 약 22,00여명의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개발사업은 2010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30-40년 전의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장차 현재의 한국과 같은 경제, 문화적 성장을 하리라는 기대를 해보았습니다.
오후에는 Sevanagala의 섬머아일랜드 사업장으로 떠났습니다. 산길(현지인의 말로는 Highway라고 함)을 가는 동안 소박하고 아름다운 시골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날>
아침 식사후 사업장 사무실에 도착하여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들었습니다. 제가 후원하는 해외 아동중 첫째와 여덟째 후원아동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후원아동 닐마니네 집에 도착하니 동네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흰 바탕에 분홍 꽃무늬 블라우스와 분홍색 치마를 입은 귀엽고 건강한 소녀가 다가와 나에게 나뭇잎사귀들을 두 손으로 받쳐주면서 마당에서 한국식과 같은 큰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반갑고 사랑스러워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이목이 있어 참았습니다. 준비해간 분홍색 운동화와 헤어밴드가 옷과 잘 어울렸고 넉넉해보이진 않지만 어린 동생과 부모님이 아주 단란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의사소통은 어려워도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훌륭히 자라서 본인이 원하는 선생님이 되리라는 것을... 아빠가 손수 만든 새가 날아가는 목판 조각품과 닐마니가 코코넛껍질로 만든 작품을 선물로 받고 다음 후원 아동의 집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나의 두번째 아동인 딜레카의 집은 조금 더 후미진 곳에 있었습니다. 맨발로 마당까지 나와 나에게 나뭇잎을 바치면서 절을 하는 모습이 왠지 더 안스러워 보였던 것은 그 아이의 약해 보이는 모습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아이는 6학년인데 4학년인 닐마니 보다 왜소해 보였고 옆에 있는 동안 계속 마른 기침을 해댔습니다. 더군다나 준비해간 운동화가 너무 커서 가녀린 다리가 짙은 자주색 원피스 아래에서 애처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 앞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장성한 오빠 둘과 어린 여동생, 농사짓는 부모님을 가진 단란한 집안의 귀한 딸로 잘 지낼텐데 왜 지금까지 제 가슴 한쪽이 서늘한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부엌다운 취사 시설도 없고 식수도 어떻게 마련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우물물을 끓인 후 작은 정수통에 여과시켜 먹는다고 했고 연료도 나뭇잎 같은 걸 벽돌 밑에서 태워서 쓰는 것 같았습니다. 전기사정도 좋아 보이지 않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보편화된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과의 만남 이후 사마드히푸라(Samadhipura)지역의 마을회관(한국 이랜드가 지원했음)으로 모여서 아동 자조 모임의 학생들과의 만남과 전통 무용 공연을 관람하고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셋째날>
셋째날에는 유치원 방문과 자원봉사활동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20여명의 유치원생 아이들이 흰색과 푸른색이 섞인 교복을 입고 문 앞에서 후원자인 손님들에게 나뭇잎을 드리며 맞이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풍선으로 왕관, 칼, 총, 목걸이 등을 만들어주고 재롱잔치를 보면서 안아주거나 놀이터에서 같이 동심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이어 식수사업으로 210여 가구에 수도물을 공급하는 식수탑을 찾아갔는데 역시 한국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했으나 아직 할 일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오후엔 사업장내 병원을 방문하여 나무를 심고 낡은 침대에 페인트칠을 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중간에 소나기가 내려 나무는 2그루도 제대로 심지 못하고 끝나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실내에서 페인트칠을 하다가 학생들의 민속공연을 보는 것으로 자원봉사활동을 마무리 했습니다.

<넷째날>
스리랑카에서의 마지막 날은 후원아동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딜레카를 만나자마자 전날 저녁에 사둔 하얀 운동화를 신겨 보았습니다.
잘 맞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동안의 나의 생각이 맞지 않는 큰 신발처럼 편협했던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았습니다. 가장 큰 자선은 남모르게 조용히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자립할 수 있도록 같이 부대끼며 도와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비싼 비행기 삯을 내고 여기에 왜 와 있는 걸까? 값싼 동정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는 위선자가 아니라면 분명 무엇인가가 보일 것이다.

 

김혜자 선생님이나 한비야 팀장님께서 보고 느꼈던 것은 잘 모르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이 겪었던 극한 상황에서 침묵하고만 계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저 같은 인간을 통해서 이 지구상의 비참함과 불행이 더 많이 알려지고 더 큰 사랑과 도움이 밀려온다면 100명에게 호소하여 한사람의 후원자라도 더 생긴다면 저는 오버한다는 비난도 달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사원과 코끼리농장을 둘러보고 펠리칸이라는 깨끗한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아마 이런 식당조차도 와보지 못한 눈치 같았습니다. 저는 그만 아이들의 손 닦아주는 것을 잊어버렸고...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벌써 오른손으로 밥을 먹기 시작한 아이들... 나도 같이 손으로 밥을 먹는데 왜 목이 메어오는지...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쭈뼛쭈뼛 서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화장실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눈물이 나오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한참을 혼자 화장실에 서 있다가 나와 보니 벌써 헤어질 준비를 하면서 식당 앞 정원에서 기념 촬영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이 아이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주길 빌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스리랑카 남쪽 해변으로, 반짝이는 인도양이 때 묻지 않은 상태로 이어졌습니다. 작년 초(2004 12.26)에 쓰나미로 인해 약 7만 5천명의 인명을 앗아간 흔적은 동남부에 비해 비교적 적었지만 간간이 아직도 복구중인 현장들이 지나쳐 갔습니다.
콜롬보로 오는 길은 계속 비가 내려 우리의 아쉬움을 표현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새벽에 떠난 비행기 안에서 스리랑카에서의 짧았던 일정들이 영화처럼 지나가면서 자꾸만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스뚜띠, 아드레이(고맙고 사랑합니다) 스리랑카.
눈물 방울이 아닌 영롱한 보석같은 찬란한 미래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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