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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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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월드비전 후원자 뭄바이사업장 방문 3

  • 2005.03.04

저는 가진 것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제겐 언제나 저의 편이 되어줄 가족이 있고, 제가 힘들때 옆에 있어줄 친구가 있으며, 아침에 눈을 뜨면 할 일이 있고, 저녁이면 지친 몸을 쉴 따뜻한 집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충분하며 갖고 싶은 것은 터무니없이 비싼 것이 아닌 이상 대부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풍족한 삶인가요?
그러나 전 자주 ‘이것만으론 부족해, 이것 보다 더 많이 필요해’ 라고 생각하며 제가 가진 것들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런한 저의 생각을 변화시킬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인도의 한 아이를 후원하게 된 것이죠.
그 아이를 후원하는 일이란 참 저를 뿌듯하게 했습니다. 마치 제가 소설속의 키다리 아저씨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하지만 그건 어쩜 교만한 맘이 있었는지도 또 나의 만족을 위한 하나의 수단 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통장에서 돈이 자동으로 빠져나가게 해 놓고선 점점 그 아이에 대한 궁금함도, 또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그 아이를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했었죠. 그러던 중 인도투어의 기회는 다시 한번 나의 생각을 변화시킬 하나의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짧은 시간 여권을 만들고 그 아이를 만날 준비를 했습니다. 아이에게 줄 인형, 크레파스, 과자…. 선물을 고르는 내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 선물을 받고 좋아할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나왔습니다.

머나먼 땅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는 참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무려 15시간 정도를 비행기에서 보냈으니, 처음 타는 비행기 치곤 너무 무리한 거죠. 하지만 뭄바이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제 맘은 콩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와 제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가까워진 듯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역시 얼굴도 잘 모르는 아이와 만나 웃고 얘기해야 한다는 것은 저를 많이 부담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또 아이가 날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맘도 생겼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전 하나님께 아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 아이와 나 사이에 사랑이 피어나고, 친 언니와 동생처럼 서먹함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물론 처음 만나는데 서먹할 것은 당연하지만요.

아침에 우린 한 학교의 교실에서 우리의 후원아동들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두 손엔 선물을 가득안고 말이죠. 기다리는 동안 제 머릿속엔 그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아픈 곳은 없을까?’ ‘날 보고 울면 어쩌나?’ ‘혹, 사진 속에서처럼 우울한 표정에 풀이 죽은 모습으로 나타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요.
하지만 그 아이를 본 순간 그런 걱정은 다 사라졌습니다. 사진속의 우울한 모습과는 달리 엄마와 언니의 손을 잡고 온 아이는 너무나 밝고 귀여웠습니다. 올해 6살 정도 된 ‘레하나’는 까만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저를 향해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전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해서 저도 덩달아 얼굴이 붉어지며 아이를 향해 웃고 있었습니다. 내 앞에 레하나가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 순간 이었습니다.

수줍음이 무척이나 많아 보이는 레하나는 엄마 옆에서 힐끔힐끔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요. 전 연신 사진을 찍었고 인도어로 “안녕하세요” 라는 뜻의 “나마스떼”를 두 손 모아 아이에게 속삭였습니다. 다행히 아이도 제가 싫지는 않았나 봅니다. 함께 “나마스떼”하고 두 손 모아 말하더군요.
전 아이에게 준비한 선물과 과자를 전해주고 사랑을 가득 담아 꼭 안아보기도 했습니다. 또 제 무릎 위에 레하나를 앉히고 그렇게 한참을 있었죠. 그러다 보니 우리 사이에 있었던 서먹함도 불안함도 다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전 레하나의 집을 방문할 기회도 제공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한참을 가서 우리가 내린 곳은 그야말로 그림 속에나 나올 만한 슬럼가의 판자촌이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목엔 쓰레기 더미가 즐비했고 그 주위에는 수없이 많은 파리가 날아다니고, 까마귀와 개와 소가 그 위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하나는 아무렇지도 않나봅니다. 그저 얼굴에는 웃음 이 가득한 모습으로 제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자집들... 집들이 미로와 같이 너무나 복잡해서 도무지 집을 찾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레하나도 길이 헷갈렸는지 가던 길을 도로 오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문 틈 사이로 보이는 그네들의 집은 정말 비좁고 더러워 보였습니다. 수도가 들어오는 것 같았지만 근처의 강은 각종 쓰레기와 오물로 너무나도 더러워 그 물을 그대로 먹는다면 어떤 병이 생길지도 모르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구불구불한 길을 레하나의 손을 잡고 한참을 가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안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고 무척이나 습했습니다. 다섯 식구가 사는데 침대는 고작 1개 뿐 이었고 살림살이라곤 그릇 몇 개와 숟가락 몇 개가 다였습니다.
그래도 집에 왔다고 좋아라 하는 아이들…. 오는 동안 목이 말랐는지 막내 쟈벳은 끓이지도 않은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십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음식을 대접한다고 흰 죽 같은 것을 주셨는데, 정말 종이컵만한 작은 종지에 그것을 담아주셨습니다. 맛은 마치 우유에 설탕을 탄 것과 같은 맛이었습니다. 이것으로 한 끼니를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겐 너무 가혹한 식단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에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그렇게 자라야 한다는 것이 제 맘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더군다나 쥐가 많아서 아이들이 바닥에서 잘 경우 쥐에 물려 전염병에 걸릴 위험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은 침대에서 자고 엄마와 아빠는 부엌 바닥에서 잔다고 합니다. 그 차디찬 바닥에서 말이죠.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레하나가 밝게 자라나 준 것이 감사하기만 했습니다.
그 모습들을 볼 때에 제 맘은 마치 죄를 지은 듯 숙연해 졌습니다. 항상 만족함 없이 불평과 불만에 가득한 모습이로 살았었는데 이들의 삶에 비하면 내가 가진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한없이 많은 것이었으니까요. 내가 먹다 남긴 음식과. 내가 입다 싫증나 버린 옷들, 내 것, 내 것 하며 살았던 모습들이 모두 후회로 다가왔습니다.
아이와 헤어져야 하는 마지막 순간.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저에게 몰려왔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천진난만한 레하나는 그래도 마냥 좋다 합니다. 그래도 가는 저의 길에 레하나는 그 작은 입술로 제 볼에 입맞춤을 해 주었습니다. 전 사랑을 가득 담아 레하나를 안아주었죠.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한다고, 건강하라고, 행복해야한다고 속삭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을 떠나는 저의 발걸음은 왜 그리 슬프고 무거운지요.

그렇게 저의 첫 후원아동 방문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헤어진 지금까지도 그 아이가 열악한 그런 환경 속에서 잘 자라날 수 있을지, 혹 건강이 나빠지진 않을지 하는 걱정이 됩니다.
이제는 매일 밤 기도합니다. 저에 레하나를 위해서요. 항상 행복하고, 지혜롭고, 건강하게 자라나길, 그리고 나를 잊지 않기를요. 어쩜 후원을 계속 하다가 레하나가 장성하면 한국에 저를 만나러 올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이번 후원아동 방문을 통해 저의 이기적인 생각과 불만에 가득했던 저의 하루하루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보고 들은 것들을 제 주위에 전하며 아이사랑 실천을 해보려 합니다. 레하나를 시작으로 후원 아동을 한 명, 한 명 더 늘려가며 베푸는 삶도 살아보려 합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아이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모든 어른들은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들이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녀라 할지라도 어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입니다.
그 순결한 마음에 상처와 불만이 아닌 사랑과 감사가 가득 채워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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