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사업장

전 세계의 생생한 사업현장.
오늘도 우리는 그 곳에 희망을 심습니다.

  • [르완다] 르완다에서 50여 년 전 우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 2004.09.01

50년 전 르완다에서 벌어진 대학살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1994년 르완다에서는 이 나라의 다수를 차지했던 후투족이 투치족과 온건한 후투족을 대규모로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학살은 20세기 가장 참혹한 내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나라 전체 인구의 1/10인 80만 명이 총이나 칼, 도끼로 잔혹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군인과 무장 세력들의 학살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성당이나 교회는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마 이곳에 있는 이들까지 죽이랴. 그러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군인은 어린이, 임산부 등 을 가리지 않고 살육을 자행하고 시신을 화장실에 빠뜨리거나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매장했습니다.

피 묻은 성모상 앞에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지난 5월,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느야마타 성당을 찾았습니다. 교회 이곳 저곳은 총탄에 맞아 패여 있었습니다. 바닥과 천장은 희생자들의 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붉은 피는 검은 색으로 바뀌었지만 분명 핏자국이었습니다. 희생자들의 피가 튀어 얼룩진 성모상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내자를 따라 성당 마당에 있는 지하 통로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해골과 뼈 그리고 시신이 안치된 관이 있었습니다. 1997년부터 정부와 IBUKA(학살당시 생존자들이 만든 단체, remember 라는 의미)가 나서서 암매장된 시신을 찾아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 안치소에는 발굴 작업 을 통해서 발견된 시신이 일부 안치된 곳입니다.

그곳 안내인은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매장지가 많으며 발굴작업과 시신보관 및 처리에 소요 될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고 합니다.

대학살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우리의 옛 속담이 있지만 르완다를 보니 그 속담이 언제나 들어맞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대학살의 상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 속에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느겐다(Ngenda)지역에서 만난 실비아(35세)는 5명의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투치족인 남편과 실비아는 1994년 한밤중에 후투족 군인들로부터 칼로 온 몸을 난자당했습니다. 남편은 머리에 큰 부상을 입고 그 충격으로 정신이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1997년 후유증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실비아의 몸도 말이 아닙니다. 습격을 받은 후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지금도 실비아의 몸에는 커다란 수포들이 있습니다. 수포는 가끔씩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고름을 짜내야 합니다. 이쯤 되면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실비아를 삼켜버립니다.
헛간보다도 못한 집에 13살, 10살, 6살 쌍둥이, 2살 막내까지 실비아가 부양해야 하는 아이들은 모두 5명입니다. 실비아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거라곤 집 주변 텃밭을 가꿔 겨우 하루에 한 끼를 먹이는 것 입니다. 그 한 끼의 식사도 콩을 삶아 먹는 게 전부인 초라한 식사였습니다.
실비아의 집을 방문한 후, 르완다 국민의 약 54%가 하루에 1달러미만의 돈으로 생활한다 는 이야기를 실감했습니다. 르완다의 평균국민소득은 약 200불입니다. 200불로 살아가는 국민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6.25를 겪으신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아마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 정신으로는 살 수 없었던 아이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과 여성입니다. 콘세사(22세)도 바로 그런 아이 중 하나입니다.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이리저리 살피는 그 아이는 한 눈에 봐도 정서 불안 상태였습니다. 눈썹은 펜슬로 아주 검게 그리고 어디서 났는지 입술에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습니다. 르완다에서 그렇게 화장한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콘세사는 부모님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장 세력으로부터 강간을 당했습니다. 너무나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콘세사는 정신을 놓아 버렸 습니다. 제 정신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들었나봅니다. 가끔 콘세사는 집을 나가서 며칠씩 들어오지 않고 이리저리 헤 매어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다 동네사람들에게 발견되면 그 분들 손에 이끌려 집에 오곤 합니다. 생활은 이웃과 이부 카(IBUKA)의 도움으로 근근이 해나가고 있습니다.

콘세사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세상에 한 명 밖에 남지 않은 혈육인 누나가 이렇듯 불안하니 동생은 마음이 펼칠 않습니다. 시종일관 풀죽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동생이 안쓰러웠습니다.

르완다의 밝은 내일을 위한 노력
월드비전은 대학살이 일어난 직후부터 르완다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이 땅의 평화구축과 화해를 위한 사업,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가옥 건축, 빈곤 가정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 그리고 지역개발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은 그 중에서도 미망인과 소년소녀 가장을 중심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집이 없는 빈곤 가정에 새 집을 지어줄 때 염소도 함께 지원해줍니다. 가난한 가정의 소득증대에 도움을 주기 위함입니다. 새 집 앞에서 환하게 웃는 아주머니의 웃음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또한 월드비전의 지원을 받아 재봉기술을 배워 수선점에서 일하는 소녀도 만났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똘똘 뭉쳐 있는 아이였는데 이 아이가 버는 수입은 가정에 큰 보탬이 되고 있었습니다.

땅 덩어리도 아주 작고, 자원도 없는 나라, 르완다의 발전은 쉬울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르완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떻게 해서든 국가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결의 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을 모델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전으로 인한 폐허를 딛고 놀라운 경제성과를 이룬 한국을 보며 희망을 품는다고 합니다. 하루빨리 르완다에 진정한 평화와 발전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 랍니다. 50 여 년 전 우리를 도왔던 많은 후원자님들이 가졌던 소망처럼 말입니다. 

글.사진 2004. 7. 10. 월드비전 홍보팀 한혜원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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