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사업장

전 세계의 생생한 사업현장.
오늘도 우리는 그 곳에 희망을 심습니다.

  • 정선 사랑의 도시락 나눔에 집을 다녀와서

  • 2002.04.25

정선 사랑의 도시락 나눔에 집을 다녀와서-

청량리역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한참을 달려 예미역이라는 낯선 곳에 도착을 하니 그 지역 사랑의 도시락을 담당하시는 엄충용 목사 님 이 우리를 반겨주셨다. 인적이 드문 시골길을 한참 달리고 나니 생각보다 큰 공간과 수많은 도시락 뚜껑이 즐비한 곳에 ‘사랑의 도 시락 나눔의 집’이라는 현판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일곱 분의 자원봉사 아주머니와 한 분의 총무집사님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 습이 아직은 낯선 광경이었다.

학생들에게 배달될 도시락 반찬으로 자원봉사 아주머니들이 열심히(서울에서 온 손님이라면서) 점심 을 차려주셨다. 사랑의 도시락에 들어가는 밥과 반찬들을 먹으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목사님과 함께 먼저 진폐환자가 계시는 곳을 방문했다. 28년간 탄광촌에서 석탄과 돌을 분리하는 일 을 하신 할머니, 방문을 여는 순간 생전 맡아보지 못한 역한 냄새가 코끝에서부터 머릿속까지 온통 뒤집어 놓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 들은 정신이상으로 매일 사고만 치고 이젠 지칠대로 지친, 그래서 더 이상 늘어날 때도 없는 주름살이 더욱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월드비전의 사랑의 도시락과 가정결연금 그리고 읍에서 주는 약간의 보조금으로 끼니를 연명하시는 할 머니의 가슴속엔 온통 사고만 치는 아들 생각밖에 없다. 제천 정신병원에 요양중인 아들, 내가 죽으면 누가 돌보아 주냐면서 할머니는 눈물 을 글썽이셨다. 그나마 월드비전에서 나오는 가정결연금 5만 원. 이것도 후원자가 후원금을 내지 않으면 고스란히 굶어야 하는 실정(후원 금 중단 후 6개월동안 월드비전이 지원)이다. ‘내 통장에 얼마나 남아있지? 통장에 잔액이 없어 후원금이 나가지 않으면 또 이런 사람들 이 목놓아 그 조그마한 돈을 기다리고 있겠구나’라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했던 아들 이야기에 할머니의 눈시울이 적셔 지 는 것을 보면서 가만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두 번째 방문한 집은 4식구(아버지-병환으로 입원, 어머니-장애인, 큰딸-병으로 입원, 막내아들-초 등학 교 4학년)가 사는 집으로 향했다. 이런 집에 사람이 어떻게 살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허름한 시멘트집, 추위만 기본적으로 가 려줄 벽, 바닥에 기어다니는 손톱보다 약간 작은 수백 마리의 개미들,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가득 끼여있는 오래된 먼지들. 아이러 니 하게도 방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장롱, 이들 4식구가 서로 어깨를 펴고 자지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 방에 앉아있는 내내 날 불 편하게 만들었다.


이들을 보면서 사회복지가 어떻고 복지정책이 어떻고는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 다. 당 장의 병원비, 이번 겨울을 버틸 양식이 그들 눈앞에 가장 시급한 현실이다. 도시락을 어느 단체에서 나누어주는지, 월드비전이 어 떤 기관인지 그들에게는 관심도 없다. 도시락이 하루라도 오지 않으면 막내아들과 자신이 밥을 굶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를 무 슨 구원자라도 되는 양 어려워하는 모습이 날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29년 동안 전혀 부족한 것이 없이 산 나로서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깝기보단 가슴이 답답한 심정으로 올 라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괜히 왔다는 생각(안 봤으면 잘 몰랐을 사건들)과 내가 감당하기 힘든 그 무엇이 날 계속 짓누르면서 더 더욱 답답해졌다. 나의 역할이 이런 상황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현실과 처지, 아픔과 고통에 조금이 라 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글/ 월드비전 후원자 이민우 님(경기도 일산)

  • 인쇄
  • 목록
  • 이전글
  • 이전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