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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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7학년 5반

  • 2011.04.15



2003년, 처음엔 월드비전 회장직을 거절하셨습니다. 왜 거절하셨나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은퇴한 다음에는 내가 내 시간에 맞춰서, 꼭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특별히 교회가 복음은 많이 전하는데, 사회봉사 쪽에선 아직 발전할 부분들이 많아요. 일생 동안 내가 사회복지 일을 했기 때문에, 내 작은 힘이나마 한국교회와 함께 같이 일하면서 교회가 사회봉사에 많이 참여하도록 지도자를 키우고, 정책방향도 세우고 싶었어. 그리고 그때가 (회장직 요청 받았던 시기)미국에서 상담치료사, 정신치료사 자격증 받기 바로 전이었어요. 65세였는데, 정말 내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월드비전과 함께 하게 된 거지. 나의 노년에 대한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고 월드비전을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하자고 마음 먹었어요. 노년기에 하고자 했던 일을 다 포기했어요.

주변의 만류도 있었나요?

평생 날 지켜보던 외과의사친구가 그러더라고, "나는 니가 정신병에 걸린 줄 알았다."고. 서울대 치대 인턴, 레지던트까지 다 마치고, 신학교 간다고 했을 때 정신병에 걸린 줄 알았대요. 그런데 신학을 마치고 병원이나 교회에서 일 안하고 동네 깡패들 모아서 소년원 마을(보이스타운)을 만드니까 자기가 볼 땐 이해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은퇴해서 이제 좀 쉬나 싶더니 65세의 나이에 월드비전에서 일을 시작한다니까 미쳤다고 했지요.

그렇게 어렵게 선택하신 월드비전은 회장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한국전쟁 때 부모형제 다 잃고 고아였어. 거리에서 동냥하고 노숙하는 생활을 했지요. 참 외롭고 배가 고팠어. 그렇게 배고프고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그리고 나처럼 배고프고 힘든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평생 남을 도와주면서 살자고 마음 먹었고. 치과대학을 간 것도, 사회복지를 다시 공부한 것도 전부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한 거였지. 치과의사도 하고 대학교수도 하고 사회복지며 상담도 공부했지. 영어나 중국어 같은 외국어도 준비되어 있었지. 내가 평생 결혼도 안하고 고생하며 살아 온 삶이 월드비전 회장직을 위해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았어. 월드비전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최고의 무대가 아니었나 싶어. 훌륭한 이사진, 훌륭한 직원들, 그리고 무엇보다 일일이 얼굴보지 못했지만 너무나 훌륭한 후원자님들을 만난 곳이지.

회장님께 월드비전 후원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 후원자들이 다 부자가 아니에요. 오히려 폐지를 모아 후원하시는 분, 힘들게 청소하시며 모은 돈으로 후원하시는 분, 가난한 학생들, 가난한 할머니, 정말 가난한 분들이 오셔서 후원자가 됩니다. 이게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지 몰라요. 나에게 한국의 40만 후원자님은 고마운 분들이고, 고마운 동지들이고, 또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형이 되어주는 분들이지. 1950년대에 우리 후원자님들 같은 분이 나한테 있었다면, 길거리에서 가마니 덮고 자지는 않았을 텐데. 60년 전에 내가 겪었던 배고픔과 외로움을 지금 아프리카 아이들이 그대로 겪고 있잖아요. 그런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시는 분들이니 참 귀하지요. 나는 고아고, 결혼도 못해서 직계가족이나 친척이 없어요. 그러니 우리 후원자들이 다 내 가족이고 형제고, 온 세계의 우리 아이들이 다 내 아이들이나 다름 없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후원자님이 계신가요?

월드비전 58주년 행사 때 한 후원자님이 나한테 다가와서 "왜 상을 줄 때 생화를 줍니까? 저 돈 갖고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살려야죠. 저는 살림이 빠듯한데도 월드비전을 통해 아이를 도와요."그래서 정말 마음에 울림이 있었어. 그래서 올해 60주년 행사를 할 땐, 아무리 큰 상을 받는 후원자나 기업에도 "장미 한 송이"씩만 주기로 한 거야. 화려한 음식이 아닌, "사랑의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한 것도 같은 이유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한 후원자님의 마음도 허투루 들을 수 없잖아. 월드비전은 아이들과 후원자들의 통로니까.

한국월드비전 직원이 600명이 넘습니다. 후배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예전 인터뷰에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큼 그렇게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으면 좋겠어. 맑은 물이 없어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은 마땅히 이 세상에서 받은 생명대로 살 권리가 있으니까. 월드비전 직원은 그냥 회사의 직원이 아니야. 후원자와 아이들 사이에서 "굴다리"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어야 해. 직접 가서 보지 못하는 후원자들에게는 아이들의 사정을 세세하게 알게끔 하고, 아이들에게는 후원자의 마음이 전해지게 해야 해. 그 지역에 지역개발사업을 통해 후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죽을 수도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 생명이 전해지게 하는 분이 후원자잖아. 그렇게 생명을 나누는 중간역할을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야. 월드비전 핵심가치 중에 "우리는 청지기입니다."라는 말이 있어. 정말 우리는 깨끗한 파이프여야 해. 우리의 기본가치를 진짜 제대로 깨달아야 해. 정말 어린이를 사랑하고, 정말 후원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일해야 해. 우리는 파이프인데 파이프에 구멍이 나지 않도록, 녹이 슬지 않도록 아침마다 후원자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일하는 거지. 의사나 간호사만 생명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생명을 다루는 일이야. 그러니 실력도 키워야 하고. 성경 시편 126편에 눈물로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는 말씀이 있어.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돼. 눈물을 흘리며 일해야 해.

월드비전 회장으로 2003년부터 8년째 쉼 없이 달려 왔습니다. 병원에도 많이 다니시는 것으로
압니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드실 것 같은데요.

7학년 5반이라 노인병이 있어요. 고혈압이 있으니 심장에도 문제가 생기고, 월드비전에서 일하면서 피부병이 생겼어요. 아프리카 풍토병처럼 생겼는데, 병원에 아무리 다녀도 낫지를 않아. 8년째 피부병은 늘 있어.

그렇게 체력적으로 힘든데도 계속 이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가마니 덮고 자던 고아가 나처럼 헐벗고 배고픈 다른 사람들 도우려고 이렇게 교육 받은 거잖아. 그러니 그게 힘이지. 그 목적이 없다면, 나는 정말 비참한 인간이 되는 거야. 내가 농담하듯이 말하는 "7학년 5반의 독거노인"이 나잖아. 이렇게 목숨을 바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정말 남들이 보기에는 가장 불행한 사람일 수 있는 거야. 70대 중반에 가족도 친척도 없는 독거노인이니까.

이제 1년 남은 임기 동안 소원이나 바람이 있으시다면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서 정말 10년 뒤엔 월드비전이 필요치 않은 세상이 올 정도가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기도하고 바라는 것은 월드비전에서 남은 1년 임기 동안 걸어 다닐 수 있고, 내게 맡겨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건강이 허락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누가 회장으로 오든 잘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가려고 합니다. 다 마모될 정도로 마지막을 열심히 헌신하고 싶어요. 내가 머리가 흰 사람이니까 내 말을 더 잘 들어주지 않을까? 얼굴에 플라스틱 깔고 가난한 아이들을 도와달라고 알리는 거지.

나중에 회장님이 돌아가신 뒤, 비석에는 어떤 말이 새겨지길 원하세요?

비석이 없을 거에요. 화장해가지고 아마 비석이 없을 거야. 나는 뭐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잖아. 그러니 비석을 세운다는 건 전혀 생각을 안 해봤어요. 한국전쟁 때 고아가 된 뒤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대에 살았어. 가장 힘든 상황에서 최선의 삶을 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비석은 필요 없고, 그저 나를 알던 후배직원들, 제자들, 친구들이 그렇게 기억해주면 좋겠어.

비석이 없으면, 남은 사람들이 서운해할 것 같은데요?

세상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겠지만, 하늘나라에 가면 점수 조금 받을 것 같은데 하하하. 대신 하나님이 물으시겠지. "너는 왜 혼자 살다 왔니?" 그 질문에는 대답 못할 거야.

글. 홍보팀 노혜민 /사진. 장은혜 재능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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