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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아프리카 르완다편 | 2014 Heal the World

내 마음을 아프게 한 르완다의 아이들

그럼에도 하늘은 파랬다.

숨가쁜 일정이었다. 1주일이 채 못 되는 시간에 아프리카 르완다를 방문한다는 계획자체가 무리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리였다. 쉴틈없이 이동한 강행군이었기에 일행들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출국 바로전까지 맡겨진 자리에서 사역을 하였기에, 아프리카 방문이 초행인 분들이 있었기에 신경이 쓰였다. 무엇보다 이 번 방문의 목적과 기대함이 있었기에 긴장하였다.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르완다 방문은 이런 염려와 긴장속에서 시작되었다.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을 중심으로 CBS 이우권 감독과 박유진 피디, 월드비전 김동휘 지부장과 나..이렇게 다섯명에게 약 1주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동행하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서로 다른 목적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같으면서도 다른 우리들이었다.

20여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마침내 르완다 키갈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크지도 세련되지도 않았지만 깔끔하고 잘 정리된 공항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게 좋았다. 화려하게 치장하는 세상, 그리고 그것을 동경하고 인정하는 세상에서 소박하지만 정갈한 느낌이 나는 분위기가 좋았다. 시골 고향이 떠올랐다. 찬이 많지 않지만 소박하고 정갈하게 차려주시던 어머니의 밥상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르완다에 첫 발을 내 딛는 순간 어머니가 느껴졌다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
키갈리 대학살 기념관

1994년 4월, 이 날은 르완다에게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 아니 잊어서는 안 되는 날로 기억해야 될 것이다. 20세기 최악의 참사라 불리는 르완다 대학살, 100일간 지속된 다수 후투족에 의한 소수 투치족을 대상으로 한 잔인한 학살, 최소 80만명에서 최대 100만명까지 학살되었을거라 추정되는 피비린내나는 현장, 바로 이 대학살을 기억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키갈리 대학살 기념관(Kigali Genocide Memorial)을 방문하였다.

키갈리 대학살 기념관을 향하는 내 마음이 어느새 숙연해져 있었다. 아니 숙연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숙연해지려고 애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대학살 기념관에 들어선 순간 나를 맞이하는 첫 느낌은 내 기대와는 다르게 참 평화롭고 여유롭다였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잠시 몰려왔다. 20세기 최악의 참사라 불리는 대학살, 80만명 이상이 무참히 살해된 현장, 내 이웃을 내 가족을 살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기에 이곳은 엄숙하고 비장한 마음이 들거라 기대했었다. 아니 적어도 내 상식으론 그런 느낌을 받게 하는 곳이어야 했다.

그런데 키갈리 대학살 기념관은 그런 곳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파란 하늘 아래 자리 잡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휴양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느낌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에 대한 내 관심을 끌어내는 듯 하였다.

기념관 내 자리 잡은 전시실은 단순히 대학살의 기록들뿐만 아니라 르완다의 태동으로부터 시작해 식민지배의 과거, 그리고 대학살에 이르는 아픔에 이르는 사실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뭇 역사 기념관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전시실 내부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대학살 시 살해당한 이들의 사진과 유품, 대학살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가족을 잃은 수많은 이들의 절규와 상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문명이란 이름으로, 기독교란 이름으로 평화롭던 아프리카를 서서히 구덩이에 빠트리고 신음하게 만드는데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서구열강들의 잔혹함이 다가왔다. 아팠다.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대학살 당시 후투족이 만든 ‘후투 10계명’이었다. 기독교인으로서 너무나 친숙한 10계명이기에 후투 10계명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런데 후투 10계명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10계명과는 완연히 달랐다. 전체 인구의 95%가 기독교인(천주교, 개신교) 르완다에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의 상징이던 10계명이 사람을 증오하기 위한 상징으로 전락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아팠다.

전시관 가장 안쪽에 자리한 대학살 시 살해당한 이들의 사진을 전시해 놓은 공간에 이르렀다. 수많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환하게 웃고 있는 한 가정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들...왜 그랬을까 이 사진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사진 속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조금은 근엄한 표정의 아빠, 사랑스런 미소를 띠며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엄마, 개구쟁이 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만드는 사내아이들, 어색하지만 수줍게 웃고 있던 여자아이...어릴적 고향집 마당에서 찍었던 가족사진이 떠올랐다. 한 장의 사진이지만 그 사진안에는 우리 가족만이 간직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쁨, 아픔, 슬픔, 희망, 꿈들이 함께 담겨있다. 그렇기에 그 사진은 우리가족에겐 단순히 멈춰있는 사진이 아닌 살아있는 사진이자 우리 가족의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시관에 자리잡은 이 사진 속 가정은 이땅에서는 더 이상 내가 느끼고 누리는 것과 같은 가족의 감정과 추억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 가족에게 이 사진은 살아 생명력있는 사진이 아닌 멈춰버린 시간이 될 것이다. 다시 마음이 아려왔다. 잠시지만 전시관 사진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특별히 이 가족을 위해 기도드렸다. 하나님...이 가족을 받아 주세요. 아니 받아 주셨음을 믿습니다.

이후 월드비전 사업장에서 짧지만 숨가쁜 일정을 보냈다. 가족들이 대학살의 아픔을 간직한채 가난과 힘겹게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고 있던 장비에 가정, 그리고 가난으로 인해 머리에 발생한 종양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아픔과 놀림 가운데 어린 시절을 보내야했던 베스틴 가정...이들에게 우리의 방문이 어떻게 다가 왔을까? 잠시 스쳤다 지나가는 수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을까? 아니면 삶 가운데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평생 잊지 못할 향기나는 사람으로 자리 잡을까?

가난으로 인해 머리에 발생한 종양을 제때 치료하지 못한 장비에

이들을 뒤로한채 일주일간의 짧은 아프리카 방문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참 숨가쁘게 달린 한 주간이었다. 함께한 일행들의 지친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번 방문을 통해 본인만이 느끼고 기억할 추억들이 있었을 것이다.

비행기 창을 통해 구름 위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르완다로 향할 때 내가 보았던 그 파란 하늘이 르완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 순간에도 변함없이 파란 하늘로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

르완다의 아이들
글. 국제사업본부 김성태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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