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안내

모든 어린이에게 풍성한 삶, 당신의 나눔으로 시작됩니다.

자료센터

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나의월드비전

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재난대응사업

전세계 각지의 재난에 대응하는 것으로
재난경감, 긴급구호, 재건복구의 3대 사업으로 이뤄집니다.
가장 빠르게, 가장 필요한 곳에, 마지막까지

  • 월드비전, 구호대상자 50만 명으로 확대 지원키로

  • 2008-05-15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은 초기 5만 가정의 25만 명 대상 긴급구호를 계획했으나, 상황이 악화되고 피해자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추가 모금활동을 통해 수혜규모를 50만 명으로 확대키로 했습니다. 이는 가장 피해정도가 심한 양곤의 5만 가구와 아라와디 삼각주 4만 가구를 대상으로 합니다.
월드비전의 긴급구호 물자는 미얀마 정부의 공식 승인 하에 현지 월드비전 직원들이 직접 통솔권을 가지고 피해민들에게 배분하고 있습니다. 현재 배분되는 물자들은 미얀마 현지에서 구입한 것들로 이뤄지며, 방수포와 같은 시급한 물품은 두바이에서 항공편으로 운송을 위해 정부의 승인을 대기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은 또한 미얀마‘나르기스’로 인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어린이들, 중상을 입거나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심리적 충격을 입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양곤 주변에 37개의 아동쉼터(CFS-child friendly space)을 설치하고 어린이들을 보살피고자 합니다.
월드비전 아동보호책임자, 삼손 제야쿠마르(Samson Jeyakumar)는“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공포를 목격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집을 잃은 수천 의 어린이들은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큰 상처(psychological trauma)를 받았다”며 “아동쉼터는 보살핌을 통해 어린이들이 이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월드비전은 2004년 쓰나미와 2005년 파키스탄 지진 당시에도 아동쉼터을 운영, 안전한 환경에서 아동을 위한 체계적인 활동 프로그램이 정서적 외상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아동쉼터는 각 100명의 아동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학교와 지역 공동시설 및 기타 장소에 설치됩니다. 월드비전은 또한 수천만 명의 어린이들이 음식과 거처를 찾고자 모여들고 있는 아라와디 삼각주 지역에도 아동쉼터를 다수 설치할 계획입니다.
월드비전은 미얀마의 재건과 피해복구사업을 위해 향후 2-3년에 걸쳐 진행할 것을 계획하고 있으며 현재 580명의 미얀마 현지 긴급구호요원을 더 늘리고 보다 효과적인 구호활동을 위해 전문인력의 배치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 한국은 초기 1억원을 지원했으며 현재 모금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600여명의 후원자와 국민들이 총 5천여만 원을 성금했으며, 외환은행 나눔재단 3만 달러(미화) 등 평소 월드비전을 통해 사회공헌을 진행했던 기업들도 긴급구호 지원을 검토 중에 있습니다. 후원자님들의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싸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덮치기 전, 미얀마 쇼총 (Shawchaung) 지역에는 약 2,0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싸이클론이 지나간 뒤, 마을에는 절반의 주민들만이 남았습니다. 싸이클론이 앗아간 사람들 중에는 이제 태어난 지 3개월 밖에 안 된 라라(가명)의 부모님도 있었습니다.

5명의 가족 중 막내였던 라라는 나르기스 속에서 홀로 살아남았습니다. 라라는 아직 지난 5월2일에 일어난 일이 자신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단 한 명뿐인 혈육인 할머니(도 폭시, 70세)와 라라가 이 힘겨운 시간을 온전히 견딜 수 있다면 할머니는 언젠가 적어도 6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태풍이 라라의 가족들도 데려갔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라라의 가족은 미얀마 연안의 쇼총지역의 라퓨타(Laputta)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라라의 아버지는 벼 농사를 짓는 이 지역의 전형적인 농민이었습니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다가 급기야 바닷물이 육지로 밀려들기 시작했던 지난 5월 2일 밤. 라라의 할머니는 순간적으로 라라를 들쳐 업고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피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찬 바람과 함께 폭우가 몰아치던 밤이었어요. 저는 아기를 데리고 앞서 갔고, 라라의 엄마도 저를 따라 왔죠. 제 곁에는 다른 마을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아기 엄마를 휩쓸어 갔어요. 저는 딸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어요. 그 사이 라라를 놓치는 줄도 모르고 말이에요. 그때 내 옆에 이웃 여자가 '아기요! 아기! 엄마를 놓고 아기를 붙잡아요!' 라고 소리쳤어요. …대체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
지옥같았던 밤이 지난 뒤. 라라의 부모님과 두 명의 오빠의 사체가 발견 되었습니다. 이제 라라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작은 몸을 감싸줄 옷 조차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기를 내 치마폭에 싸서 이 캠프에 데리고 왔어요." 할머니는 고향 마을이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라라와 함께 보트를 타고 무앙 마(Myaung Mya) 지역으로 떠나왔습니다. 라라의 할머니는 '죽은 사람들이 온 사방에 널려 있었지만 남은 이들은 사체들을 매장할 수 있는 힘조차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라라와 할머니가 난민촌에 이르렀을 때 할머니는 쇠약할 때로 쇠약해져 있었고 라라는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라라의 할머니가 겨우 얻어온 우유 한 병이 두 사람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어디서 그 우유를 얻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 우유가 라라를 살렸어요."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할머니와 라라가 난민촌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라라를 키워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라라를 떠나 보내지 않았습니다.
"내 친척들은 누군가에게 아기를 줘 버리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못해요. 라라는 이제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단 하나의 희망이 되었으니까요."
이제 라라와 할머니는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의 지원을 받아 당장의 위기는 넘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얀마 전역에는 라라처럼 싸이클론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은 어린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들의 작은 관심과 사랑의 실천이 가장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얀마 주민들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후원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