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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딸" 한비야의 이라크에서 보낸 편지

  • 2006-09-04

 
[중앙일보] 9월 2일자

"바람의 딸" 한비야의 이라크에서 보낸 편지


"수돗물 5일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학교엔 화장실 없어 아무데나 "볼일 "
"외국인 떠나라" 구호단체도 공격대상


오지 여행가로 유명한 한비야(45)씨는 6월 16일부터 이라크 모술에서 2개월여 구호활동을 벌였다.
바그다드 유엔 사무실 폭파사건에 이어 모술에서도 대규모 총격사태가 벌어지자 지난달 말 예정을 2주일여 앞당겨 철수했다. 이 글은 현지에서 작성해 인터넷으로 보내왔다. 현지 르포를 3회로 나누어 싣는다.

"앗 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를)," "알레이쿰 앗 살람(당신에게도 평화를)."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평화를 빌어보지만 아직 이곳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한 지 1백일. 그런데도 이곳의 긴장감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간다. 미 군정에 불만을 품은 세력, 후세인 시절을 잊지 못하는 세력의 저항이 갈수록 조직적이고 치밀해지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담 후세인의 두 아들이 피살된 곳도 이곳 모술이다.

인구 1백50만명, 이라크 제3의 도시인 모술에 주둔해 있는 미군의 인명 피해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며칠 전 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10여대 앞서 가던 미군 정찰차에 폭탄이 날아드는 것을 봤다. 굉음이 일어나고 순식간에 화염이 치솟았다. 그 차 운전병은 분명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문제는 미군뿐 아니라 외국인은 모두 미군 협력자라고 몰아세우며 유엔을 비롯한 인도적 구호단체까지 공격대상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술의 유엔 보급창고는 벌써 세번이나 폭탄이 터져 큰 불이 났고, 창고를 지키던 현지 직원은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모술에 상주하는 유일한 국제구호단체인 우리 월드비전도 예외가 아니다. "모술을 떠나라"는 괴 전단이 사무실로 끊임없이 날아들고, 현지 직원들에겐 "외국인을 도우면 가족들이 위험할 것"이라고 협박 한다.

지난 7월 17일, 후세인의 집권당인 바트당 창립일 직전에는 "사무실과 숙소. 차량을 모두 폭파하겠다 "는 협박 편지가 날아들어 직원 모두 다른 곳으로 긴급히 피신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지역 종교지도자가 초대하는 저녁식사는 언제나 환영이다. 일과 후 저녁밥을 하지 않아 좋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역 종교지도자와 가깝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후세인 통치 시절이나 지금이나 이 지역의 실세는 종교지도자들이다. 이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현지인들의 호감을 사는 첩경이다.

"코드 레드", 지금 모술은 빨간색, 전혀 안전하지 않다. 구호단체들은 사업지역의 위험상태를 녹색.노란 색. 빨간색.까만색으로 표시한다. 녹색은 안전, 노란색은 경고, 빨간색은 위험, 까만색은 구호활동 불가능으로 사업장 철수를 뜻한다.
코드 레드 아래의 일상은 괴롭기 짝이 없다. 현장으로 갈 때는 반드시 쇳덩어리보다 무거운 방탄조끼를 입어야 하고 사무실을 한발이라도 떠나면 들어올 때까지 수시로 위치와 상황을 무전기로 보고해야 한다.
호출이 오면 즉각 응답해야 한다. 그걸 못하면 다음날 안전 브리핑 시간에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지뢰지역 파악이나 불발탄 처리 등을 정기적으로 교육받지만 불발탄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에겐 한국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빨리 내려놔아아아!!!, 내려놓으란 말이야."

요즘 이라크의 가장 절박한 문제는 식수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이라크의 상수도와 사회기반 시설은 이웃 나라의 부러움을 샀다. 특히 티그리스강이 흐르고 막대한 저수량의 댐을 끼고 있는 모술은 항상 물이 풍부했다고 한다.
그러던 게 이란과의 8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그리고 이후 12년간의 경제제재로 상수도 시설이 형편없이 파괴되고 수돗물 관리가 엉망이 됐다. 정부 통계로는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역이 전국의 60%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송수관이 심하게 부식돼 시뻘건 녹물이 나오는 등 수질이 매우 낮다.
또 모술 등 북부지역은 쿠르드족과 아랍족이 끊임없이 대립하고 후세인 정권 때 혹독한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사정이 더욱 열악하다.

우리 숙소는 모술시내 부유한 동네에 자리잡고 있고, 집안에 커다란 물탱크가 있어 물부족을 직접 겪지는 않지만 나가보면 수돗물이라고는 5일에 한번도 구경하기 힘든 곳이 태반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물 탱크차가 파는 물을 사먹어야 한다. 물값이 1천ℓ에 약 3천디나르(2천4백원), 일용 노동자의 일당의 반에 해당할 만큼 비싼 값이다. 상황이 이러니 한낮 기온이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더위에도 씻기는커녕 마시는 물도 아껴야 할 형편이다.
게다가 이곳 풍습은 화장실 뒤처리를 휴지가 아니라 물로 하는데 물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제대로 씻지 못한 더러운 손으로 눈을 만지거나 음식을 먹으니 탈이 날 수밖에 없다.

▲ 이라크 초중학교에 설치한 식수대

학교, 특히 시골학교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수백명의 학생이 다니는 학교에 식수대는커녕 화장실도 없다. 한 학교에 가서 "볼일이 급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선생님들은 바로 옆의 교장 사택으 로 달려가고, 학생들은 하루종일 참거나 급하면 아무데서나 일을 본단다.
그래서 여자 아이들은 학교에 오는 걸 아주 싫어한다. 이렇게 깨끗한 물이 부족하면 설사는 물론 위생이 불결해 생기는 전염병이 창궐하게 마련이다. 이 지역 보건소 직원의 말에 따르면 지난주 환자가 2백46명이었는데 그중 69%가 설사와 눈병 등 더러운 물로 인한 질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월드비전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만큼은 깨끗한 물을 실컷 마실 수 있고, 위생적인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각 학교에 식수대를 마련하고, 화장실에서 항상 물을 쓸 수 있도록 넉넉한 크기의 물탱크를 배치하는 사업이다.
9월 개학을 해 아이들이 학교에 왔을 때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는 식수대와 새로 생긴 화장실을 보고 얼마나 놀라면서 좋아할까? 생각만 해도 뿌듯하다.

놀랍게도 모술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은 내가 처음이 아니다. 한 건설회사가 1985년부터 4년간 대규모 펌프장 공사를 했고 한국인 4백여명이 있었다고 한다. 아야드라는 이름의 우리 팀 현지 엔지니어 한 사람이 그들과 일했다.
늘 유쾌한 아야드는 아직도 "안녕하세요?" "빨리 빨리" "뭐라고?"라는 한국말을 또렷이 기억했고 이 세 단어를 어찌나 엉뚱하게 섞어 쓰는지 매일 배꼽을 잡았다. 이 친구, 며칠 전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한국 사람은 옛날에도 물 공급 공사를 하더니 이번에도 식수 관련 일을 한다면서 정중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 한국은 우리에게 물을 가져다주는 나라군요. 슈크란 제질란(정말 고마워요)."
그 말에 으쓱해진 내가 이 친구처럼 엉뚱한 말로 대답했다. "뭐라고?"


[한비야씨가 맡은 활동은] 시골학교에 식수대 공급
월드비전은 이라크 북부 모술과 서부 알룻바에서 국내 난민 보호와 전후 어린이 보호, 초.중학교의 식수.위생사업을 벌이고 있다. 나는 식수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한국.미국.호주가 지원하는 사업부문을 총괄한다.
총예산 약 40억원으로 1백70개 초.중학교 학교에 식수대를 설치하고 위생적인 화장실을 짓는 일이다.

한국이 지원하는 사업 규모는 14억원으로 31개의 초.중학생 1만5천여명이 대상이다. 한국지원분에는 한국 국제협력단을 통한 정부 지원금 2억4천만원도 들어있다. 월드비전한국은 또한 영원무역.이랜드 등이 기증한 의류 14만여벌(15억원 상당)을 니느웨 및 알룻바 지역에 나누어주고 있다.

깨진 수도관을 연결하고, 수도가 없는 시골학교에는 우물을 파고 물탱크를 설치해 동네 주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게 내가 맡은 일의 핵심이다. 그동안 전쟁으로 인한 폭격, 전쟁 이후의 방화와 약탈 등으로 대부분의 학교 시설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10월부터 2차 식수사업도 계획하고 있지만 규모와 실행 여부는 미지수다. 이라크에 대한 관심이 약해져 모금이 어려워지면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월드비전 소속으로 일하는 사람은 모두 10명이다. 사업운영본부장, 물자 운반 및 배분, 재정 및 인력 수급, 안전, 홍보, 물 전문요원,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 명의 프로젝트 매니저가 있다. 한국 월드비전 53년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이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중책을 맡았다.

사업 진행에 필요한 현지인 직원을 고용하고(엔지니어만 10명, 일용직까지 합하면 1백명도 넘는다) 미군 민간협력담당관.유엔기구 대표 및 다른 국제 NGO들과 일이 중복되지 않게 조정하며 정부 관리 및 학교장을 만나 협조를 구해야 한다. 또 일의 범위와 수위를 정하고 공사가 잘 진행되는지 관리.감독하는 한편 지역 내의 종교지도자 및 주민과의 관계를 돈독히 다져야 한다. 게다가 각 나라 정부와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사업보고서를 작성하고 예산을 관리한다. 현장에서 생기는 모든 골치아픈 문제도 풀어야 한다.

전쟁 중 병영으로 쓰였던 학교에서는 심심치 않게 불발탄이 터져 인부들이 다친다. 학교장이 자기 집에도 물탱크를 설치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조르는 일도 처리해야 하고, 설치해 놓은 모터 펌프를 누가 훔쳐갔는 지도 직접 조사해야 한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2년 전 아프가니스탄 파견 때는 홍보담당이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도대체 월드비전 국제본부에서 나의 무얼 믿고 이런 막중한 일을 맡겼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잘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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