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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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업장 안내

 일반구호사업 - 심각한 식량난 및 자연재해등이 발생할 경우 주민들과 지역을 위한 구호사업을 실시합니다.

황해도 불타산 목장의 황소60마리는 바로 사랑의 기도와 결실이었다.

일반구호사업은?

첫 대북지원이 시작된 초창기
1990년대 초반 머나먼 아프리카의 불쌍한 어린이들을 도우 면서 우리의 골육인 북한 어린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월드비전은 한민족, 북한 돕기 위한 사랑의 금식운동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전쟁의 상처 속에서 거리를 헤매던 가난 한 고아와 과부들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처음 시작된 월드비전이 이제는 전쟁으로 분단된 또 하나의 나라 북한에게도 사랑의 손길을 펼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북한 동포를 돕는 것은 우리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허락도 있어야 했고 북측의 입장도 고려하여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만 했습니다.
모든 어려운 난관을 헤치고 오로지 고통에 빠진 우리 동포를 돕겠다는 선한 동기를 굽히지 않은 채 1994년 역사적인 첫 대북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황해도 불타산 목장의 황소 60마리는 바로 사랑과 기도의 결실이었습니다. 이어 사랑의 의약품 보내기 운동본부를 통해 평양 제3병원에 침상 500개도 지원하였습니다.
인도적 대북 지원에 대해 정부의 이해를 촉구하며 협의를 계속해 나가던 1995년 3월, 월드비전은 중국 심양에서 북한의 조선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양곡지원사업’에 대해 합의를 하였고 1995년 5월, 중국산 밥수수 500톤을 중국 도문에서 함경북도 남양에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해 여름 북한을 휩쓸고 간 홍수와 태풍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고 북한 당국도 국제사회의 지원을 공식적으로 처음 요청하였습니다. 월드비전은 아사 위기에 처한 북한 주민들을 구하고자 밀가루 1천톤을 황해북도 은파군과 린산군의 수재민에게 제공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의약품, 담요, 의류, 종자, 식량 등 긴급구호 물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육아원, 병원지원
북한 큰물피해대책위원회는 1997년 7월 12개 도에 소재해 있는 육아원에 보건의료팀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미국인의사를 중심으로 한 대표단이 구성되어 방북하여 북한 어린이들의 신체 발육 및 영양 상태를 조사하였습니다.
방북 목적은 영양실조에 있어 가장 취약한 계층인 2세 미만 영아들의 영양실조 상태 파악 위한 자료 수집을 위한 것이었고 12개 육아원 중 5개소를 방문하여 52명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85%의 영아들이 영양실조 상태였으며 60%는 심한 저체중에 해당되었다. 방문단의 일원이었던 월드비전캐나다가 파견한 영양학자는 1997년도 5월과 6월에는 영양사망률이 급증했다고 밝혔습니다.
월드비전은 제3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영아들을 지원해온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전체 12개 육아원에 상주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겠다는 사업제안을 했으나 북한 당국이 난색을 표명하여 협의는 결렬되었습니다. 월드비전은 월드비전이 운영하는 국수공장이 위치한 평안남도 평성시와 강원도 원산시에 있는 육아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상주 직원이 점검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에서 필요한 물자지원의 내역을 파악하여 겨울옷과 신발, 비타민, 담요, 기저귀감용 광목 등을 제공하였습니다.
월드비전 직원들은 1998년 초 육아원을 방문하는 가운데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른 수많은 영아들이 입소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육아원에서 아이들을 더 이상 수용할 자리가 없기 때문에 입소조차도 거부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98년 EU, UNICEF, WFP와 북한당국이 협력하여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영양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62% 어린이가 만성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어린이 전부가 식량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보고가 된 것이다. 평양에 상주했던 월드비전 연락 사무관이 함경남도의 한 영아원을 방문했을 때 어린이들이 너무나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고 긴급하게 쌀 7.2톤을 구입하여 겨울나기 식량으로 보충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월드비전은 북한의 보건관계자들을 만나 병원, 보건소, 영아원을 방문했고 어린이 보건을 위한 사업 계획을 협의하던 중에 우선 개천시 인민병원을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개천인민병원은 16만명의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개천시 인구 33만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40km 반경 내의 농장 병원을 감독하고 있다. 1999년 한 해 동안 휠체어, 침대용품, 외과 수술기구, 장갑, 환자복, 포도당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약품과 의료장비를 지원하였습니다. 200년에도 히터와 의료장비, 구급차 등을 지원하였고 월드비전 의료 전문가가 방문하여 보건 상황을 조사하였습니다.
긴급식량지원
초창기에 긴급식량 지원은 북한 내에서 가장 극심한 식량난 을 겪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한 곳인 함경남도 함흥시를 중심 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98년 5월, 식량 분배계획과 월드비전 직원이 현장을 방문하여 분배결과를 점검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합의서가 월드비전과 북한의 수매양정성간에 체결되었습니다. 같은해 5월 말에 옥수수 1,000톤을 긴급하게 지원하여 7세~17세의 학생이 있는 가정에 분배하였는데 이는 약 11만 6천여명의 학생들이 21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2차 식량 지원은 9월에 이루어졌는데 옥수수와 콩 3,000톤을 구입하여 함흥시 뿐 아니라 신흥군과 함주군의 주민들에게 까지 분배하였습니다. 식량의 구매와 도착, 배급 등 전 과정에 있어 월드비전 직원이 직접 관여하였고 2차분 식량 수송 및 배급 과정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월드비 전 직원이 북한에 한 달 동안 체류하기도 하였습니다.
50대의 화차가 보름이 넘는 기간동안 식량을 싣어 날랐고 함흥역에 도착한 식량은 일일이 무게를 재고 계수를 한후 식량배급제를 통해 각 지역으로 배급되어 약 23만 3천여명의 주민이 1개월분의 식량을 배급받았습니다.
북한 농업성은 함경남도 지방이 다른 지역에 비해 식량난을 2배나 심하게 겪고 있다고 호소하였고 WFP는 월드비전에게 자기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 특히 함흥시의 도시 실직자들에게 긴급하게 식량을 원조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1999년 2월, 월드비전은 긴급하게 밀 1,300톤을 구매하여 학령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분배하고 그 지역을 방문하여 수혜자들과 인터뷰들도 실시하였다.
북한의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고비를 넘어선 2000년 이후에도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농업개발사업 추진과 병행하여 밀가루, 쌀 등 식량을 필요에 따라 수시로 지원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절기에 영원무역에서 의류를 특별 제작하여 매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협동농장지원
긴급식량지원활동을 하면서 월드비전은 식량난 해결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게 되었고 이모작을 위해 1997년 봄보리 종자를 소량 제공하였다. 이 종자가 놀라운 수확을 가져오면서 1998년 1월, 봄보리 종자 사업을 확대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97년 12월 방북 중 농업위원회(현재 농업성) 대표들은 월드비전에게 북한 식량 증산을 위해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농업을 지원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 하였습니다. 이듬해 2월에 월드비전 농업기술단은 북한 내 7개 협동농장을 방문하여 북한의 농업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농장의 대표들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1998년 월드비전과 북한 농업위원회는 4개 시범 협동농장을 선정하여 농업복구사업을 지원할 것을 골자로 하는 MOU에 조인했다.
평안남도 개천시 인근에 위치한 보부, 외서 협동 농장과 강동군에 소재한 삼등, 봉하 협동농장을 지원하기로 한 것입니다. 4개 협동농장의 총 인구수와 경작지 면적, 곡물 생산량, 트렉터 보유수 등 기초 자료 조사가 실시되었고 이후 묘판 및 채소 재배를 위한 비닐하우스용 비닐 530만 평방미터와 트렉터 및 농업트레일러용 타이어가 630여개와 비료 2,555톤, 방한복 6,600점 등이 지원되었습니다.
물자 지원 후 5월과 9월 2회에 걸쳐 현장을 방문하였고 평가를 실시하였다. 작물 수확을 눈앞에 두고 불어 닥친 이상기후로 인해 작물 수확이 기대 이하로 감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년도 대비 훨씬 높았고 인근 협동농장의 수확량을 웃도는 수치였다. 이것은 4개 농장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식량배급을 받을 인근 도시의 가구들이 앞으로 먹을 양식이 많아지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월드비전이 지원한 비료 일부는 협동농장에 살고 있는 개인이 일구는 텃밭에도 뿌려지게 되었습니다.
1999년 2개의 협동농장(함경남도 함주군 동봉, 신흥군 창서)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하여 전체 6개의 협동농장을 지원하게 되었다. 6개 협동농장의 총인구수는 약 2만 5천여명 가량이고 총 경작지는 8,336ha로 조사되었습니다.
1999년 한 해 동안 6개 협동농장에 비닐 290만평방미터, 트랙터 타이어 664개, 트레일러 타이어 408개, 비료 3,300톤, 분무기 400개, 종자(옥수수, 콩, 채소) 18톤, 비닐온실 72개동 등을 지원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뭄과 홍수 등이 거듭되며 수확량은 기대치에는 못 미쳤지만 전년도와 대비한 결과 수확량이 높아졌고 인근 농장과 비교해도 형편이 나은 편이었습니다. 비닐 온실은 협동농장 인근에 위치한 영·유아원에 지어졌고 약 4,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이 온실에서 생산한 채소 등으로 혜택을 받았습니다. 1999년 7월에 4명의 북한 농업기술자가 영국 DFID 후원으로 캠브리지에 있는 국립 농업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2주간 종자 증식에 관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2000년에도 협동농장 지원사업을 계속 이루어졌고 비닐 33만평방미터, 비료 520톤 트렉터 타이어 432개, 트레일러 타이어 288개, 분무기 200여개가 지원되었다. 6개 협동 농장에서 쌀과 옥수수 등 주요작물의 평균 수확량이 ha당 1.5톤이 증가되었고 감자는 ha당 8~14톤이 증가되었습니다.
협동농장지원사업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 동안 추진 되었는데 평양이나 대도시가 아닌 외부인의 방문이 쉽지 않은 지방 세부 단위까지 들어가 지원활동을 했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으며 협동농장지원사업에서 얻은 성과와 경험은 이후 월드비전이 농업개발사업을 추진해 나가는데 기반이 되었습니다.
998년 2월 방북하여 7개 협동농장 대표들과 면담한 자리에서 날로 극심해져만 가는 식량난으로 기름을 짤 수 있는 콩과 같은 작물 대신 곡물을 심게 되었고 지방(유지)류 공급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방은 영양 상태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으로 1998년부터 월드비전과 북한 농업과학원은 식용기름의 원료가 되는 기름씨(캐놀라) 재배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캐놀라 종자와 기름 짜는 기계, 비료, 분무기 등을 지원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월드비전은 국제본부 직원 2명을 상주 연락관으로 북한에 파견 하였고 1998년 10월부터 1999년 8월까지 평양에 상주 하며 근무 하였습니다.

긴급구호활동

쌀보내기
만성적인 식량난으로 극심한 기아 상태에 놓여 있는 어린이, 노약자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쌀을 지원하여 굶주림의 고통을 덜어주고 민간 최초의 대규모 쌀지원 운동을 통해 인도적 차원의 대북식량지원에 대한 국민적 합의 기반을 확대하고 민족간 화해 협력 증진에 기여하고자 ‘평화의 쌀 보내기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참여연대·SBS 연중 캠페인 “평화를 이야기합시다-북한 어린이에게 희망의 손을”을 통해 기업 및 일반 시민 모금 등 각계에서 모아진 성금으로 2003년 8월부터 2005년 5월까지 쌀 1,860톤과 밀가루 790톤이 지원되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2003년 7월에 민경련·참여연대·월드비전 3자간에 쌀 2,000 ~3,000톤을 지원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1차로 2003년 8월에 국내산 쌀 500톤을 지원하고 이후 추가지원분에 대해서는 중국산 쌀을 구매하여 지원하기로 하였는데 2004년 봄, 중국 내 쌀 반출금지 조치가 내려짐에 따라 부득이 쌀 대신에 밀가루로 대체하여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북측에서는 사전에 지원 쌀에 대한 분배계획서를 제출하였고 참여연대·SBS와 함께 평양에서 조인식을 개최하였으며 쌀이 도착하는 화물역과 분배가 이루어진 육아원 등을 방송에서 공개 촬영하도록 하는 등 모니터링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였습니다.
용천역 폭발사고 긴급구호 활동
2004년 4월 22일 용천역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이틀 만에 민간단체 최초로 북한 민경련으로부터 공식 구호요청을 받게 됩니다. 민경련 북경대표부는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두꺼운 담요라며 담요를 ‘대긴급’ 보내줄 것을 fax로 요청해 왔습니다. 월드비전은 보다 신속한 대응을 위해 긴급구호팀을 중국에 급파하였고 중국 단둥(丹東)에 긴급구호 사무소를 설치하고, 4월 27일 국내 최초의 구호물자인 담요 5,000장이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철교를 넘어 용천역 사고 현장에 전달되었습니다. 담요 5,000장의 인수증을 받는 자리에서 북측 관계자는 “당장 먹을 것이 시급하다”는 요청을 하였고 그동안 월드비전을 통해 꾸준히 대북지원활동을 펼쳐온 송학식품(대표 성호정)의 후원으로 빵 20,000개와 식수를 지원하였고 으뜸농산은 김치 대신 먹을 수 있는 단무지 5톤을 전달했습니다.
모아베이비에서 유아복과 유아용품 한 컨테이너 분량을 비롯하여 한아봉사회에서도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간식 일체를 제공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김혜자 월드비전 친선대사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책의 인세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생필품 지원에 사용해 달라며 기부하였습니다.
사고 발생 후 약 2주 동안 용천의 매우 긴박한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된 후 단동에서 철수하였습니다. 이후 한국에서 인천 항과 북한 남포항을 오가는 정기선박을 통해 광림교회 등의 후원으로 신발, 담요, 식량, 옷, 주방용품, 과자, 문구류 등 지속적인 지원 활동을 펼쳤다. 강원도민일보사의 후원으로 7월에 책가방 3,500 지원을 마지막 구호물자로 전단하고 용천 긴급구호활동은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못자리용 비닐지원
2005년 봄철 파종기를 맞이하여 못자리용 비닐은 긴급히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여 개성 육로 수송을 통하여 총 580만㎡의 비닐을 3월 9일부터 31일가지 5차례에 걸쳐 지원하였다.
이번 비닐지원에는 12개 민간단체가 참여하였고 3월 9일 공동출항식을 시작으로 총 5,420만㎡의 비닐을 지원하였으며 민간 지원 물자 최초의 육로 수송이 이루어졌다. 또한 월드비전과 민경련이 협력하여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인도요원 방북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총 46명의 대표단이 방북하여 개성현장 모니터링을 공동으로 실시하였습니다. 이처럼 민간단체들이 공동으로 대처함으로써 육로 수송, 모니터링 등 북한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